희우정을 기리는 노래[1] : 喜雨亭頌歌 / 춘정 변계량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8】

2016-04-21     장희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세종7년 5월이었다. 둘째 형님의 별서인 서교(西郊)에 납시어 주변의 경관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때마침 기다리던 가뭄의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파안대소를 아끼지 않던 성군께서는 이 정자의 이름을 즐겁게 내리는 비를 맞은 정자라 이름하고 총애하는 신하에게 송가를 지으라 했다. 명을 받은 춘정 변계량은 12행 팔언고시풍을 지어 바치니 이것이 ‘희우정송가’다. 시인이 읊은 시를 임의 4행으로 끊어 읊었던 시 수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喜雨亭頌歌(희우정송가)[1] / 춘정 변계량
새 정자에 봉황새 그려 나는듯이 앉는듯이
그 누가 지었는가, 어지신 우리 군후
서교에 남기신 왕의 백성 가뭄 걱정 필요없네.
翼彼新亭如鳳斯騫 誰其作之君侯之賢
익피신정여봉사건 수기작지군후지현
王出西郊匪遊匪전 民方播種憂旱于田
왕출서교비유비전 민방파종우한우전

희우정을 기리는 노래(喜雨亭頌歌)로 변역해본 율(律)의 첫째구인 팔언고시다. 작자는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1369∼1430)이다. 희우정은 조선 효령대군 이보의 별서로 서교의 정자다. 세종7년 임금이 이곳으로 행차하여 연회를 베풀다가 마침 비가 내려 주위의 들을 적시자 ‘희우정’이라 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날 듯한 새 정자가 봉황새 나는 듯한데 그 누가 지었는가, 어지신 군후(君侯)였는데. 왕이 서교(西郊)에 납시어서 놀이함이 아니오, 백성이 한창 씨앗 뿌리는데 가뭄을 걱정하심이었다]라는 시상이다.
성군의 총애를 받고 있는 한 신하가 있었다. 하루는 어가를 모시고 대군의 별서에 도착했다. 구름이 끼더니만 비가 내렸다. 성군은 이 별서의 이름을 즐겁게 비 내리는 정자라는 뜻을 담아 ‘희우정’이라 이름하면서 성군은 정자의 송가를 지어 부르라 명했다.
시인은 임금의 명을 받아 즐겁게 이 정자의 송가를 지어 바친다. 날듯한 새 정사가 봉황새 나는 듯 한데 어지신 성군이 지어 불렀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화자는 이는 성군이 서교에 납시어 놀이한 것이 아니라 백성이 농사를 짓는데 씨엇 뿌리는 가믐을 걱정한 한 것이라고 칭송한다. 성군의 덕을 길이 칭송하는 시상을 일으키고 있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왕이 정자(亭子)에 계시니 때맞추어 비 쏟아지네, 왕이 군후와 잔치하시는데 저 북소리가 둥둥 울린다. 정자이름 내려 빛나는 영화가 전에 없었네, 군후가 머리 조아리시니 임금의 덕이 하늘과 같네]라고 했다. 성군의 덕망을 칭송한다.
【한자와 어구】
翼彼: 저기에 날다. 新亭: 새 정자. 如鳳斯騫: 봉황새가 나는 듯하다. 誰其作之: 그 누가 지었는가. [之]는 정자를 가리킴. 君侯之賢: 어지신 군후였거늘.
王出西郊: 왕이 서교에 납시다. 匪遊匪전: 놀이함이 아니다. 民方播種: 백성이 씨를 뿌리다. 憂旱于田: 들에 가뭄을 걱정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