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의 등잔불 : 寄君實 / 풍월정 이정(월산대군)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6】
2016-04-07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여관의 새벽 등불 희미하게 보이고
가을철 외로운 성 가랑비 내리는구나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 강물처럼 흐르는데.
旅館殘燈曉 孤城細雨秋
여관잔등효 고성세우추
思君意不盡 千里大江流
사군의불진 천리대강류
여관의 등잔불(寄君實)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풍월정(風月亭) 이정(李?:1454~1489)으로 추존된 덕종의 맏아들이며,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이다. 왕세자로 책봉된 아버지가 1457년(세조 3)에 죽자 할아버지인 세조의 사랑을 받으며 궁중에서 자랐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여관의 새벽 등불은 희미하고, 가을 외로운 성에 가랑비가 내린다.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 끝이 없어, 천리나 긴 강물처럼 흐른다]라는 시상이다.
이정은 1460년 월산군에 봉해졌고, 1468년 동생인 잘산군(?山君:뒤에 성종)과 함께 현록대부(顯祿大夫)가 되었다. 그의 좌리공신 책록은 성종의 장인인 한명회(韓明澮) 등 권신들이 종실의 대표격인 ‘구성군’을 제거하고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취한 조처의 일환이었다. 왕위 계승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던 풍월정은 권신들의 농간을 겪게 되자 양화도 북쪽에 망원정(望遠亭)을 짓고 풍류로 여생을 보냈다.
한 대군이 여관집에 투숙했다. 새벽에 멀리서 비추는 등불은 희미하고 가을철 외로운 성에 가랑비는 시샘이나 하듯이 부슬부슬 내린다. 그리는 사람이 있어 마음이 끌려가며 사무치는데 천리나 되는 긴 강물이 시인의 마음처럼 기다랗게 흐르고 있음을 상상하고 있다.
화자는 객지에서 느끼는 쓸쓸함과 허전함으로 새벽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창가엔 가랑비 내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며 들린다. 밤늦도록 왜 잠을 이루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3구와 4구에서 화자의 말을 통해 밝힌다. 나그네의 쓸쓸함보다는 그리움이 짖게 깔려 있음이 엿본다.
【한자와 어구】
旅館: 여관. 殘: 희미하다. 꺼져가다. 燈曉: 새벽 등잔불. 孤城: 외로운 성. 細雨: 가랑비. 秋: 가을. 이 [秋]는[孤城]과 [細雨]를 수식하는 역할을 함.
思君: 그대를 생각하다. 意: 뜻. 그대를 생각하는 그 뜻. 不盡: 다함이 없다. 끝이 없다. 千里: 천리. 大江流: 큰(긴) 강으로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