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버니

2016-02-25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색소폰 동호인들이 일주일에 한번 씩 모여서 음악 공부와 함께 연주 연습을 하고 있다. 십여 명이 넘는 회원들은 대개가 오십대인데 칠십이 넘은 사람은 나 하나라서 다른 이들이 좀 불편 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괘념치 말라고 하며 그래도 함께 하면서 지주 역할을 해 주는 것이 더 좋다고 듣기 좋게 이야기를 하니 나 또한 욕심이 있어 시간 마다 열심히 참석하여 배우고 있다.
그런데 지난 주 시간에는 강사 선생님이 요즘 유행하는 노래로 합주 연습을 할 곡이라며 악보를 나누어 주었는데 제목이 “오라버니”이다. 합주곡이니 가사는 없더라도 유행하는 노래라 하기에 혹시 조금이라도 아는 노래일까 싶어서 악보를 살펴보니 아는 노래이기는커녕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곡이다. 하기야 요즘 유행하는 노래라고 하면 트롯이나 발라드풍은 아닐 것 같고 아이돌이라고 하는 가수들이 부른 노래라면 별로 관심도 가지 않고 한 두 번 들어 보았자 알 수도 없었겠지만 다음 주 까지 개인 연습을 해 오라고 하기에 조금은 난감하기도 하여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으로 찾아서 노래를 들어 보았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해도 잠재적 관념 때문인지 젊었을 때 유행 했던 영화 주제곡 두 남매나 그 유명한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처럼 오누이 간의 애틋한 우애를 연상하며 누이동생에 대한 오빠의 마음을 노래 한 것이리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착각도 이만저만 착각이 아니다. 우선은 곡도 경쾌하고 가사는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직설적인 표현이 재미있다하면서도 어쩐지 기대에 대한 실망감 때문인지 쉽게 다가오지를 않는다. (전략) 오라버니 어깨에 기대어 볼래요/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지금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중략) 오라버니 목소리에 울고 웃어요/ 내겐 영원한 오라버니.
젊은이들에게서 여자가 연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낱말의 본뜻은 아니더라도 이젠 보편적 호칭이 되었다고 하니 가타부타 말하기가 어렵고 또 그렇게 이해 할 수밖에 없기에 요즘 대중가요의 직설적인 표현도 그렇게 이해 할 수밖에 없지만 모순임에도 내 착각과 익숙해지지 못함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편을 들어주자면 이런 노래에 낮선 이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 하면 이 또한 탓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연인 사이에서도 호칭을 오빠라고 하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 우둔한 탓으로 노래에 대한 선입견은 완전히 망가졌으니 이제는 시대를 따라가는 이해와 참여가 좀 더 적극적 이여야겠다는 다짐도 새롭게 해보지만 살아온 세월의 관념이나 관습들이 그렇게 쉽게 도와주지는 못 할 것 같다,
만일 이런 노래들이 군사 정권시절에 나왔더라면 아마도 국민 정서를 해친다고 해서 금지곡이 되었기 십상일 것이다. 그 무렵 불려 졌던 “임이라 부르리까”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랫말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간절히 사랑하면서도 애타게 그리워하면서도 그 사랑이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울면서 임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 부르리까, 하는 여인의 하소연 속에는 사랑하는 이를 무어라 부르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 않나 싶은데 만일 그때도 시대가 지금과 같았더라면 이 여인도 오라버니 하며 그 어깨에 기대고 싶어요, 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면 그 마음이 그렇게 아프지 않았을 것 아닌가.
문화와 예술 오락 등이 시대에 영향을 미치고 또 그 시대성을 표현 한다고 해서 대중가요 하나를 가지고 시대를 비교 한다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이들 노래 속에 담긴 마음은 같더라도 노랫말이나 곡은 그 때와 지금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시대와 세대의 차이를 그대로 말 해주는 것 같다. 하기야 사랑은 혼자 가슴앓이 하기 보다는 즐겁고 행복해 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므로 그러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표현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알뜰한 당신”같은 노래가 칠팔십 년 동안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연인에게는 오라버니 보다는 당신이라는 말이 더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들어도 격세지감은 어쩔 수 없으니 그러고 보면 훌쩍 달아난 세월 탓인지 그 세월을 따라가지 못한 내 탓인지 알 수가 없어도 어쨌든 변하는 세월을 따라가기가 벅찬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쨌든 악보를 받았으니 나 때문에 연주가 그릇 치지 않도록 열심히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