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롭게 지내며 뜻을 기술함 : 述志 / 야은 길재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6】
2015-10-29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개울 옆 띠풀 집에 한가롭게 살고 있네
밝은 달 맑은 바람 흥취마저 넘치고져
산새와 벗 삼으면서 편히 누워 책본다네.
臨溪茅屋獨閑居 月白風淸興有餘
임계모옥독한거 월백풍청흥유여
外客不來山鳥語 移床竹塢臥看書
외객부래산조어 이상죽오와간서
한가롭게 지내며 뜻을 기술함(述志)으로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로 고려 말의 문신으로 조선이 건국되자 절의를 지켜 은거했다. 그래서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와 함께 고려 삼은(三隱)이다. 이 시에도 미련 없이 속세를 떠나 한가로이 지내는 시인의 당찬 모습을 나타낸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개울 옆의 띠풀 집에 한가히 혼자인데, 밝은 달과 맑은 바람 흥취가 넘치구나. 찾아오는 손님 없이 산새와 벗을 하고, 대밭으로 평상 옮겨 편히 누워 책을 보네]라는 시상이다.
고려의 삼은 절신을 찬양해 보는 시조다. [온갖 영화 담았다가 벽장 속 감춰주고 / 거센 바람 새 왕조야 어서 가라 물리치니 / 삼은의 곧은 절개가 절신(絶臣)되어 가르친다] 조선 조정에서는 극진한 예우를 갖추어 모시려 했지만 끝내 거절하였던 절의를 생각할 때에는 위 [술지(述志)]도 좋겠지만 한 단계 나아가 세상일에 초탈했던 풍모를 생각할 때에는 [한거(閑居)]쯤이 어울리겠다.
시골의 조용한 개울가에 작은 초가집을 짓고 혼자 살고 있지만, 불어오는 바람과 환한 달빛이 비추어주니 삶에 흥취가 절로 가득하다. 세상과 등지고 살고 있으니 찾아오는 손님 하나 없다. 산새가 옆에서 지저귀니 외롭지도 않다.
화자는 절의와 달관자적 삶을 표현했다고 하지만, 그냥 한가한 어느 한 때의 모습을 묘사한 정도가 더욱 좋겠다. 현대인들은 인공 구조물 속에서 늘 바쁘고 여유가 없다. 찾는 손님은 없지만 산새와 벗하고 대밭으로 평상을 옮겨 누워 책을 보는 도인의 경지도 생각한다.
【한자와 어구】
臨溪: 개울에 임히다. 茅屋: 띠풀집. 獨: 홀로. 閑居: 한가롭게 살다. 月白: 밝은 달. 風淸: 맑은 바람. 興有餘: 흥취가 있다. 흥취가 넘치다.
外客: 외부의 손님. 不來: 오지 않는다. 山鳥語: 산새와 말을 하다. 벗하다. 移床竹: 대밭으로 평상을 옮기다. 塢: 나무이름. 臥看書: 누워서 책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