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그리운 바타비아'...오장환 신인문학상 채인숙씨

2015-09-17     나기홍 기자
"오장환 시인의 이름으로 주는 상을 받는 사실이 감격스럽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두려워 지고 있습니다"
오장환 시인(1918~1951)의 시적 성과를 기리고, 부박해지는 문학적 환경 속에서 시의 현실적 위의를 되새기기 위해 제정한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자인 채인숙(45·여)씨는 12일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채씨는 실천문학사에서 주관한 이번 '제4회 오장환신인문학상'에 '1945, 그리운 바타비아' 외 5편을 응모해 영예의 당선을 차지했다.
심사위원들(장문석·함순례·황인찬 시인)은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를 배경으로 쓴 당선작(1945, 그리운 바타비아)은 식민지의 기억과 낭만적 사랑의 기억을 이국적 풍경과 잘 섞어냈다"며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정조를 조탁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식민지배로 파국을 맞은 어떤 사랑의 이야기가 그 사랑이 끝난 극장에서 그림자극으로 다시 상연되고, 그것이 다시 지금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이 절묘한 확장에서 투고자의 저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당선자인 채씨는 17년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사는 교포 문인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문학상 공모내용을 보고 작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작 제목의 '바타비아'는 자카르타의 옛 이름이다.
채씨는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죽어간 오 시인의 생애를 알고 난 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시를 읽은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낯선 모스크바에서 죽음을 맞이한 오 시인의 삶과 시는 350년 이상 열강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네시아에서 오랜 세월을 살며 향수병을 앓는 그녀에게 시대를 넘어 동병상련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작품 속에 이러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베어 깊이를 더하고 있다고 심사위원들은 봤다.
심사위원들은 "산문에 가까운 문장이지만 시적 리듬을 잃지 않고 있으며, 진술을 주되게 사용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떠오르게 하는 솜씨가 기성 시인에 못지않았다"며 당선 이후 그녀의 활동을 더 기대했다.
채씨는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지만, 시적 재능을 알아본 선배들의 권유로 교내서 시 동인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시에 빠져들었다.
한때 방송작가와 카피라이터로 활동한 그녀는 17년 전 남편을 따라 인도네시아로 간 뒤 닥치는 대로 시를 읽으며 외로움을 달랬다고 한다.
혼자 읽고 혼자 쓰고 혼자 지우곤 했지만, 시를 쓴다고 호들갑을 떨 형편도 아니었다.
"저는 시를 쓰기 위해 절망의 끝까지 가 있는 시인들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시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던지고 참혹하게 견디는지 보고 있었습니다. 시를 쓸 생각을 하는 게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시에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은 "너는 시를 써야 한다"라며 끊임없이 격려해준 지인들 덕분이었다.
이번 당선에 관해 "시를 계속해서 써보라는 문단의 허락으로 받아들인다"는 그녀는 아직 서툴지만,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시인이 될 것을 다짐했다.
채씨는 '제20회 오장환문학제'가 열리는 18일 보은읍 뱃들공원에서 상패와 상금 500만원을 받는다.
한편 오장환신인문학상 역대 당선자로는 이재연(1회)·신윤서(2회)·리호(3회) 시인이 있다.
/나기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