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구먼, 지금 부모의 그 심정을 : 覽物有感 / 용재 이행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3】
2015-07-16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마당가 살구열매 누렇게 익어가고
붉은 앵두 다닥다닥 정답게 붙었구나
알겠네 부모님 심정을, 자식걱정 이 마음.
庭杏欲黃熟 含桃紅滿枝
정행욕황숙 함도홍만지
方知父母意 我亦念吾兒
방지부모의 아역념오아
알겠구먼, 지금 부모의 그 심정을(覽物有感)로 번역되는 오언절구다. 작자는 용재(容齋) 이행(李荇:1478∼1534)으로 그는 지금도 필동 골짜기 둔덕 바위 위에 청학도인(靑鶴道人)으로 쓰인 글씨가 있는데 이곳이 이행이 살았던 집터라고 알려진다. 우의정 대제학을 지냈던 사람으로 퇴궐 후에도 망건에 무명옷 차림의 평범한 시골의 모습으로 이곳을 거닐었다고 한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마당가 살구는 누렇게 익어 가고, 붉은 앵두는 다닥다닥 열렸네. 알겠네, 지금 부모의 심정을.. 나 역시 내 자식을 걱정하는 걸]이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사물을 보고 느낌이 있음]으로 번역된다. 연산군 10년, 무오사화의 참혹함을 채 잊기도 전에, 조정에는 또 한 차례 액운이 밀어닥쳤다. 연산군의 모후인 폐비 윤씨의 복위에 반대하였다는 명목으로 많은 신하들이 극형을 받거나 유배를 당했던, 갑자사화가 그것이다.
당시 응교(應敎)로 가 있던 시인 또한 이에 연루되어 그 해 4월 7일에 곤장 60대를 맞고 충주(忠州)로 유배 가게 되었는데 이 시는 그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생사(生死)를 예측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되면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하잘 것 없는 사물도 각별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화자는 가족과 막 이별하고 도착한 유배지에서 접하게 된 살구며 앵두의 선명한 색상과 풍성한 이미지는 평소보다 더욱 곱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잠시 감정이 고조되게 만들었을 것은 분명하다 하겠다. 자기를 보내는 부모 마음을 생각했을 것이니 화자 또한 그 자식을 생각하는 각별한 마음을 드러내고도 있다.
【한자와 어구】
庭杏: 정원의 살구나무. 欲: 하고자 하다. 黃熟: 누렇게 익다. 含: 머금다. 桃紅: 붉은 앵두. 滿枝: 가지에 가득하다. 다닥다닥 붙었다.
方知: 알겠네. 바야흐로 알겠구먼. 父母意: 부모님의 진정한 뜻(의지). 我亦: 나 또한. 念: 생각하리라. 吾兒: 내 자식. 곧 ‘내 자식들의 걱정’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