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낙의 눈물만 뺨에 가득하고 : 伊川 / 어우당 유몽인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6】
2015-05-28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아낙이 베 짜면서 뺨에 가득 눈물 괴고
낭군 위해 겨울옷을 촘촘히 짜렸더니
아침에 관리에게 건네니 다른 관리 또 찾았네.
貧女鳴梭淚滿시 寒衣初擬爲郞裁
빈녀명사루만시 한의초의위랑재
明朝裂與催租吏 一吏재歸一吏來
명조열여최조리 일리재귀일리래
가난한 아낙의 눈물만 뺨에 가득하고(伊川)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다. 성리학의 대가 성혼의 문인인 그는 스승의 교훈을 거역해 파문당하여 성혼이 죽은 뒤에 그를 모욕하는 글을 써서 비난을 받았다. 황해도관찰사?좌승지?도승지를 거치는 등 승승장구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가난한 아낙이 베를 짜니 눈물이 뺨에 가득하고, 겨울 옷, 처음에는 낭군 위해 짜려 했구나, 아침에 칼로 끊어서 관리에게 건네니, 한 관리 돌아가자 다른 관리 찾아오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이천에서 본 여인이]로 번역된다. 강원도 이천군에 있는 면에서 보았던 어떤 사실을 시문으로 읊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자연을 음영한 것이 아니요, 지방 관리들의 수탈의 모습이었다. 조선 사회가 극도로 피폐하여 살기가 어려웠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정도였던가를 짐작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적나라한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보인다.
위 시에서 시인의 생각을 적는 대목은 한 마디도 없다. 낭군을 위해 옷배를 짜고 있다는 것 외에는 들은 내용도 없다. 모두는 본 내용을 서술 형식으로 시문을 썼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시인의 간곡한 염원이라면 수탈의 비참함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엿보게 된다.
화자는 처절한 여인의 비통함을 한 마디로 쏟아내고 있다. 남편의 겨울옷을 짜고 있던 옷배다. 그런 정성으로 짜던 배를 끊어 주고 났더니, 오후에 또 다른 관리가 찾아왔다는 대목에서 비참한 생활상을 고발하는 시적 묘미를 살려 내는 효과를 부린다.
【한자와 어구】
貧女: 가난한 아낙. 鳴梭: 배를 짜다. 淚滿: 눈물이 가득하다. ?: 뺨. 寒衣: 겨울 옷. 初: 처음에는. 擬: ~하려고 하다. 爲郞裁: 낭군 옷 짜다(만들다)
明朝: 밝은 아침에. 裂與: 끊어서 주다. 催租吏: 곡식 재촉하는 관리. 一吏: 한 관리 ?歸: 겨우 돌아가다. 一吏來: 한(다른) 관리가 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