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은 꽃이 피어 있을 줄이야 : 石竹花 / 형양 정습명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37】
2015-03-26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진분홍 모란꽃을 사람들은 좋아하여
집안 뜰 가득 심어 정성들여 가꾸구나
황량한 초야에서도 좋은 꽃 핀 줄 알며.
世愛牧丹紅 栽培滿院中
세애목단홍 재배만원중
誰知荒草野 亦有好花叢
수지황초야 역유호화총
보기 좋은 꽃이 피어 있을 줄이야(石竹花)로 제목을 붙여본 율의 전구인 오언율시다. 작자는 형양(滎陽) 정습명(鄭襲明:?~1151)이다. 향공(鄕貢)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내시(內侍)에 처음 들어갔다. 인종의 유명을 받들어 다음 임금인 의종의 잘못을 거침없이 간(諫)하다가 결국 왕의 미움을 사는 등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다. [동문선]에 석죽화 등 3편의 시가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사람들 진분홍 모란을 좋아하여,집안 뜰에 가득 심어 가꾸네, 누가 알리, 황량한 초야에도, 좋은 꽃이 피어 있을 줄이야]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패랭이꽃을 보면서]로 번역된다. 초야에 묻혀 사는 자신의 처지를 패랭이꽃에 비유하여, 세속에서 사랑받는 모란과 대응시키고 있다. 패랭이꽃이란 우리말 이름은 꽃송이의 생김새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시인은 꽃이 외진 곳에 피어 있다 보니 제대로 안목을 가진 임자를 만나지 못한 탓은 아닐까? 후구로 이어지는 패랭이꽃은 [어여쁜 모습은 연못 속의 달을 꿰뚫었고, 향기는 밭두렁 나무의 바람에 전하네, 외진 땅에 있노라니 찾아주는 귀공자는 적고,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붙이네]라고 읊었다. 큰 수술을 받고 나서, 애써 밝은 웃음을 짓는 여인의 얼굴이라고나 할까? 해쓱하면서도 홍조를 띤 다소 애잔한 꽃이라고 하겠다.
화자는 영물시에 뛰어났던 이규보(李奎報) 같은 시인까지도 이 꽃을 보고 평하기를 “영락(零落)하여 가을 날씨를 견디지 못하니, 죽(竹)이란 이름을 쓰기엔 외람되다[飄零不耐秋, 爲竹能無濫.]”라고 읊었으니 시의 뜻을 알만하다 하다.
【한자와 어구】
世: 세상, 세상 사람들. 愛: 사랑하다. 牧丹: 모란꽃. 紅: 진홍빛. 栽培: 재배하다, 가꾸다. 滿: 가득하다. 院中: 집안에, 뜰안에. // 誰知: 누가 알 것인가, 누가 알리. 荒: 황량하다. 草野: 초야, 초야에 묻혀 살다. 亦: 또한, 그 역시. 有: 있다. 好花叢: 좋은 꽃의 떨기. 보기 좋은 한 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