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 문화적 향수에 놀랐습니다”
시인 김수영 부인 김현경(89)여사 보은과의 특별한 인연
2015-03-26 보은신문
현대시사의 ‘풀’ 의 시인으로 유명한 김수영 시인의 부인으로 유명한 김현경 여사는 일제강점기인 1927년 태어나 경성여자보통학교(현 덕수초등학교)와 진명여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신여성으로 당대 신여성으로 유행의 첨단을 걸어온 분이다.
그녀는 시인 김수영을 만나 결혼을 하고 김수영이 47세의 젊은 나이로 죽자, 홀로 인생을 살아오면서 보은과의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그가 선병국 가옥을 찾은 것은 속리산 에밀레박물관 조자용 박사와의 인연이었다.
“서울에서 의상실을 운영할 때 서울 등촌동에 소재한 에밀레박물관의 전시물에 대한 미술캐릭터로 활동하면서 조 박사와의 각별한 인연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에밀레박물관을 속리산으로 옮기기 위한 속리산 박물관 조성을 위해 당시 거처를 마련한 곳이 이 곳 선병국 가옥이었습니다”
두 번째의 보은과의 인연은 보은 출신의 천재시인 오장환 시인에 대한 기억이다. 김 여사의 사촌오빠는 김소월의 시 산유화, 진달래꽃 등의 가곡을 발표했던 작곡가 김순남(방송인 김세원의 아버지)으로 그 사촌오빠 집에서 오장환 시인과 만났다고 전했다.
“첫 인상이 품위 있고 교양 있고 말쑥한 미남형인 오장환 시인은 남루한 차림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낙타색의 코트를 입었는데 귀티가 나고 고귀한 인상이었지만 몸이 매우 약해보였는데 나중에 오 시인으로 부터 신장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 시인과의 두번째 인연은 바로 오장환 시인이 자신의 집 뒷집에 살았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집은 돌집이라 불리웠고 동서남쪽에 대문이 있을 정도로 집 규모가 쾌 큰 부잣집이었습니다. 우리 집 뒷집이었고 오 시인의 누님 집에서 기거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고 당시 오 시인의 약혼녀를 누님 집에 데려와 소개하는 모습등이 생각납니다”
“특히 오 시인이 일본의 사찰형사들에게 쫓겨 우리 집으로 피신해왔을 때 저희 아버지께서 하루정도 숨겨준 기억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 친일 시 한 편 쓰지 않고 오롯이 민족정신을 지켜온 듯 합니다. 또 오 시인이 해방이 되면 새 세상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것과 달리 좌우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시대적 상황을 '병든 서울’로 표현한 것으로 1940년대 시대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옵니다. 다행히 보은에서 오장환 시인을 선양하는 사업이 진행되어 문학관도 잘 짓고 문학행사도 성대하게 하는 것을 보니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듭니다”
한편 김 여사는 올해 89세로 남은 생애가 많지 않다며 자신이 살아온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사회적 엘리트계층 신여성들의 생활상과 활동을 비롯 문화예술계 인사들과의 교류에서 보은과의 인연을 각별히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