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기 죽은 후에 악기 줄 처음 끊겨 : 古琴 / 운곡 원천석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32】
2015-02-05 장 희 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태고부터 냉랭하고 재주는 기발해도
백아의 물노래를 아는 사람 어찌 적나
악기 줄 끊어버린 종자기 애석함 알만하네.
太古冷冷韻技奇 伯牙流水少人知
태고냉랭운기기 백아유수소인지
子期死後絃初絶 棄置虛堂良可悲
자기사후현초절 기치허당량가비
종자기 죽은 후에 악기 줄 처음 끊겨(古琴)로 번역되는 칠언절구다. 작자는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1330~?)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은사(隱士)이자 절신이다. 세상의 어지러움을 보고, 치악산에 은거하면서 당시 사적을 바로 적은 야사(野史) 6권을 저술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태고부터 냉랭하고 운치와 재주 기발하여도, 백아의 흘러내리는 물노래 아는 사람 적구나, 종자기가 죽은 후에 악기 줄 처음 끊어져 , 빈 집에 버려두었으니 정말로 슬퍼할 만하구나]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오래된 거문고]로 번역된다.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결국 거문고 줄마저 끊어버렸다 해서 [백아절현(伯牙絶絃)] 고사가 전한다. 춘추전국시대에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매우 잘 탔고,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들을 줄 알았는데, 종자기가 죽어 거문고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사람이 없게 되었다. 백아는 그만 절망한 나머지 줄을 끊어 버리고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 고사다.
위 시는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착상을 얻었으며 아무리 운치와 재주 기발한 음악일지라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한갓 쓸모없는 연주이자 음률이다. 더 이상 연주할 만 한 가치가 없다.
그래서 회자는 백아가 끊어 놓은 쓸모없는 옛 가야금을 고려 말 기울어져 가는 나라와 빗대어 음영한 시로 작가가 원주의 치악산에 은거할 수밖에 없었던 우국의 심정을 우회적으로 비유한다. 망해가는 고려와 고금(古琴)이란 악기를 같은 선상에 놓고 있다.
【한자와 어구】
太古: 태고. 冷冷: 냉랭하다. 韻技奇: 운치와 재주가 기발하다. 伯牙: 백아, 거문고를 잘 탄 사람. 流水: 흘러내린 물소리. 少人知: 아는 사람 적다. 子期: 종자기, 음악을 잘 듣는 사람. 死後: 죽은 후에. 絃初絶: 악기줄 처음 끊다. 棄置: 버려두다. 虛堂: 빈 집. 良可悲: 참으로 슬퍼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