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를 내가 어찌 손을 댈 것인가[2] : 讀書 / 화담 서경덕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9】
2015-01-15 장 희 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조선의 사회는 철저한 신분제도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달랐을 지라도 많은 선비들은 돈이 없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드렸다. 재산이 없으면 그저 띠풀 집이라도 괜찮다는 낙관론에 사로 잡혀 살았다. 끼니를 앉힐 식량이 없어도 안빈낙도 하며 삶을 즐겼다. 거유 서경덕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기철학(氣哲學)의 체계적인 완성하면 그만일 뿐 부귀와 재산이 무슨 필요하겠느냐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나물 캐고 고기 낚아 그렁저렁 살아가며
달을 읊고 바람 쐬며 정신을 씻어 보네
내 학문 이치 깨달으니 어찌 인생 헛되겠나.
採山釣水堪充腹 詠月吟風足暢神
채산조수감충복 영월음풍족창신
學到不疑知快活 免敎虛作百年人
학도불의지쾌활 면교허작백년인
부귀를 내가 어찌 손을 댈 것인가(讀書)로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1489~1546)이다. 철학은 만물의 근원과 운동변화를 기로써 설명하고, 그 기를 능동적이고 불멸하는 실체로 본 데 특징이 있다. 격물을 중시했던 그의 학문방법은 독창적인 기철학의 체계를 세우는 바탕이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나물 캐고 고기를 낚아 그런대로 살면서 / 달을 읊고 바람을 읊으며 정신을 씻네 / 내 학문 이치를 깨달아 즐겁기만 하니 / 어찌 이 인생이 헛되겠는가]라는 시상이다.
전구에서 시인이 읊은 시심은 [글을 읽을 때 큰 뜻을 품으니. 가난의 쓰라림도 달게 받아진다. 부귀에 내가 어찌 손을 댈 것인가? 산과 물에 포근히 안기고 싶다.]라고 쏟아냈다. 부귀와는 결코 영합하지 않고 산과 물에 포근히 안기겠다는 시인의 결연한 자기 의지를 노정했음을 밝혔다.
전구에서 이어지는 위 시에서 안빈낙도의 한 모습을 보게 된다. 나물 캐어 먹고 물고기를 손수 낚아 그럭저럭 살으련다는 다음 단계의 삶의 구상을 한다. 채식만 먹겠다는 의지에 이어서 동산에 떠오르는 달을 보며 시를 읊고, 계절마다 바뀌는 바람도 쏘이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이 보다 절경의 지경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자는 이제 자연과 더불어 안빈낙도하는 생활을 하고나니 정신이 맑고 상쾌했으니 이제는 학문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심회를 담게 된다. 이런 인생살이를 화자는 인생을 가장 멋있게 지냈으니 헛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한자와 어구】
採山: 산나물을 캐다. 釣水: 물에서 고기를 낚다. 堪充腹: 충분하게 배 채우며 견디다. 詠月: 달을 읊다. 吟風: 풍월을 읊다. 足暢神: 정신을 넉넉히 하다. 學到: 학문이 이르다. 不疑知: 알아서 의심이 없다. 快活: 삶이 즐겁다. 免敎: 배움을 면하다. 虛作: 헛되이 짓다. 百年人: 사람의 평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