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 꽃 만발하니 하마 머리 쇠었겠지 : 佛日庵贈因雲釋 / 손곡 이달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7】
2014-12-24 장 희 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구름에 묻혔어도 스님은 쓸지 않고
지나던 손이 와서 가만히 문을 여니
온 산에 송화 만발하니 하마 늙지 않았을까.
寺在白雲中 白雲僧不掃
사재백운중 백운승부소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객래문시개 만학송화로
송화 꽃 만발하니 하마 머리 쇠었겠지(佛日庵贈因雲釋)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손곡(蓀谷) 이달(李達:1506~1571)로 최경창 백광훈과 삼당시인이다.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제약으로 벼슬길이 막힌 울분을 시문으로 달래며 제자교육으로 여생을 보냈다. 말년엔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를 가르쳤으며, 허균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절집이라 구름에 묻혀 살기로 / 구름이라 스님은 쓸지 않았고 / 지난 손이 와서야 문을 열어 살펴보니 / 온 산의 송화 꽃 만발하니 하마 쇠었겠지]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불일암 인운 스님께 드린 글]로 번역된다. 백의는 우리 민족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백의민족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하얀 파도만 봐도 예사롭게 여기지 않았고, 아리랑 한 곡만 들어도 순백한 민족혼과 함께 흰색을 연상하며 민족의 대동단결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시인이 암자에서 수도에 정진하고 있는 스님을 찾아간 계절이 한 겨울이었다. 그는 온 산이 하얀 천을 깔아놓은 듯 소복하게 눈으로 덮여있는 시적 배경 속에 흰 구름도 흰 눈으로, 흰 눈도 떠가는 흰 구름으로 착각하게 되는 멋진 착상을 연상하면서 시상이 전개된다.
화자는 날마다 스쳐지나가는 구름을 스님이 비를 들고 쓸 리 없다. 아침에 소복하게 내린 눈을 스님이 쓸지 않았던 것은 아마 흰 구름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지만, 봄이면 어김없이 날리는 흰 송화 가루로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노스님의 머리가 희어진 것도 이런 원인에서 찾는 시적 화자의 기발한 착상도 만난다.
【한자와 어구】
寺: 절, 사찰. 在: 있다. 白雲中: 흰 구름 가운데 있다. 白雲: 흰 구름. 僧: 중, 스님. 不掃: 쓸지 않는다. 客來: 손님이 오다. 門: 문. 始開: 비로소 열다. 萬壑: 일만 구렁, 곧 온 산. 松花: 송화가 만발하다. 老: 늙다, 곧 송홧가루가 흰색이니 늙은이의 머리카락으로 상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