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죽의 부채에 써 준 글이 마지막이었나? : 題崔孤竹扇 / 기봉 백광홍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
2014-08-14 장 희 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관서명승 큰 강마다 꽃 정자에 눈 팔면서
백상루에 가거들랑 누각 아래 물어보소
푸른 창 넌지시 넘보는 몽강남이 있을테니.
關西名勝大江三 處處花亭駐客참
관서명승대강삼 처처화정주객참
君到百祥樓下問 碧창應有夢江南
군도백상루하문 벽창응유몽강남
고죽의 부채에 써 준 글이 마지막이었나?(題崔孤竹扇)로 제목을 붙어본 칠언절구다. 작가 기봉(岐峯) 백광홍(岐峯 白光弘:1522~1556)은 관서평사를 지냈다. 그가 쓴 가사 관서별곡은 송강의 관동별곡 보다 25년이나 앞선 기행가사의 효시(嚆矢)로 알려진다. 34세에 병으로 귀향하는 도중에 쓴 시며, 이후 객사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관서의 명승으로 큰 강이 셋이 흐르나니 / 곳곳마다 꽃 정자가 객의 수레 머물게 하네 // 그대 백상루에 가거들랑 누각 아래 물어보시게 / 푸른 창엔 분명히 몽강남(夢江南)이 있을테니]라는 시상이다.
병이 깊어 귀향하는 도중에, 백상루를 향하는 도중에 고죽 최경창을 만난다. 가객 시인에게 어찌 여인이 없을손가. 황진이나 이매창 같은 시걸(詩傑)은 아닐지라도 기막힌 사연을 담았던 몽강남 같은 기녀와 아기자기한 로맨스쯤은… 위 시의 제목 밑에 다음과 같은 부제가 붙어 있어 그 사연이나마 우리는 알 수 있다.
“공이 평사가 되었을 때 안주의 기생을 사랑했다. 병으로 교체되어 돌아오다가 길에서 고죽과 만나서 이 시를 써주었다. 고죽은 부채를 기생에게 주었더니 기생이 구슬퍼하는데 이미 부고가 이르렀다(題崔孤竹扇 [公爲評事時 眷安州妓 以病遞還 路逢交承孤竹 題此詩於扇 孤竹以贈扇妓 妓慘然而已訃至])”에서 보인다.
화자는 관서명승지의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으로 관서지방의 절경을 묘사하면서 백상루에 가서 누구에나 몽강남 기생을 물어보라고 한다. 그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거든 안부나마 전해달라고 간곡히 청하는 위 시문에서 깊은 정감을 느끼게 된다.
【한자와 어구】
關西: 여기선 평안북도 접경지역. 名勝: 명승지. 大江三: 큰 강(압록강, 대동강, 청천강) 셋. 花亭: 꽃 정자. 駐: 머물다. 客?: 나그네의 마차. // 君到: 그대가 도착함. 百祥樓: 청천강 가에 있는 누각. 碧?: 푸른 창. 應: 응당 반드시. 夢江南: 몽강남(사람 이름), 곧 기봉 백광홍의 정인(情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