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이 주는 의미
2013-11-28 최동철
칼바람은 문틈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와 무릎마저 시리게 한다. 전기료 아끼려는 침침한 시골 방안의 노인은 공허하기만 하다. 그에게는 마치 겨울바람이 ‘이제 갈길 가자’하는 저승사자의 재촉하는 소리와도 같다.
하기야 엄동설한 강하게 부는 바람이 없다면 언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있겠는가. 봄여름가을 동안이야 해 뜨면 일했고 해 지면 누웠다. 그런 사이 육신의 시듦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창문 밖 겨울바람이 눈앞을 지나칠 때야 비로소 내 명(命)을 느낄 수 있다.
최근 관속에 누워보는 ‘임종체험’이 나름 일반인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한다. 컴컴한 관속에 눈을 감고 누우면 만감이 교차하며 살아온 생을 돌아보게 된단다. ‘내가 만약 숨을 거두어 여기 누워있다면...’하고 생각하면 누구나 ‘지금 가장 절실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유럽 최고의 부자가 됐던 알프레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도 ‘죽음’이라는 충격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다.
스웨덴 출신의 그가 프랑스에서 생활하던 어느 날 호텔에 배달된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문짝만하게 실린 신문의 첫 기사에는 ‘알프레드 노벨 사망’이라고 대서특필되어 있었다. 물론 오보였다. 사실은 그의 형 루드비그 노벨이 사망했는데 신문사에서 혼동하여 잘못 쓴 것이었다.
하지만 노벨은 그 기사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단 한 번도 예상치 못했던 자신의 죽음 뿐 만아니라 신문에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라는 표제 하에 ‘사람을 더 많이 더 빨리 죽이는 방법을 개발해 부자가 된 인물’이라고 폄하하는 부고기사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세계적 발명가라는 명성과 엄청난 재산도 한낱 부질없음을 알게 됐다. 또한 자신이 역사의 죄인임을 깨달았다. 인류평화를 위해 만든 다이너마이트가 숱한 생명을 빼앗는 살생의 무기로 사용되고 있는데 대해 가슴 아파했다.
노벨은 죄의식에 사로잡혔다. 자식도 없었던 그는 마침내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했다. 1895년 11월 이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896년 12월 10일 6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가 헌납한 기금은 과학의 진보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한 그의 유언에 따라 노벨상이 됐다.
엄동설한,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욕망, 집착에서 벗어나 허허롭게 살다가 모두 내놓고 노벨처럼 훨훨 겨울바람 따라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