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양떼 노릇에서 벗어날 때

2013-11-14     최동철
16세기 프랑스의 최대 풍자작가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 '팡타그뤼엘'에는 파뉘르주라는 특이한 인물이 등장한다. 조선 후기 풍자적 인물인 ‘봉이 김선달’과 흡사하다. 소설 속의 파뉘르주는 주인공이 아닌 조연급에 불과한데도 주인공 그 이상의 흥미로운 인물이다.

천하 건달 중의 건달인 파뉘르주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곤 오직 죽음밖에 없다. 소설 속 주인공 팡타그뤼엘의 부하로서 사악하고 교활할 뿐만 아니라 남을 골탕 먹이기를 ‘놀부 심보’못지않게 잘 하는 주정뱅이이다. 그렇지만 그는 천부적인 재치도 있어 고지식한 인간들을 마음껏 뒤흔드는 배짱과 능변을 갖춘 건달이기도 했다.

마침 배를 타고 여행을 할 때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양을 잔뜩 실은 상인과 함께 배를 타게 됐다. 얼굴에 기름기가 돌고 거부답게 거만해 보이는 그 양 상인은 허름한 차림의 팡타그뤼엘의 행색을 보고 모욕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부하 파뉘르주는 앙갚음을 결심했다.

그리하여 재치와 능변으로 살살 구슬러 그 자가 데리고 가는 양들 가운데서 우두머리 격의 제일 큰 숫양 한 마리를 비싼 값으로 샀다. 그런 후에 그 숫양을 집어 들어 냅다 바다 쪽으로 던져 버렸다.

양떼들은 크고 기운 센 우두머리 숫양을 따라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습성이 있다. 파뉘르주는 그런 습성을 익히 알고 교묘히 활용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바다에 던져진 우두머리 숫양을 따라 다른 양들도 차례차례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에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던 양 상인은 마지막 남은 양의 꼬리를 잡고 있다가 그 양과 함께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때부터 ‘파뉘르주의 양떼’라는 말은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이는 부화뇌동(附和雷同)의 무리를 일컬을 때 종종 인용되곤 했다. 이를테면 ‘어떤 부류의 인간들은 파뉘르주의 양떼일 뿐이다. 그들에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들려줘도 남들이 귀를 기울이면 정숙히 듣는다. 그들은 진실여부 따위는 관심이 없다. 큰 거짓말일수록 오히려 더 잘 통한다’식이다.

사실 보은지역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파뉘르주의 양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정치 쪽을 비롯한 경제, 문화 예술계 할 것 없이, 공직이건 사조직이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는 양떼 근성을 가진 이들이 있다.

이들은 어떤 사태의 진짜 문제점과 핵심에는 관심이 없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조차 면밀히 따져보지도 않는다. 인사권자가 부당한 지시를 해도 그대로 따른다. 힘이 센듯해 보이고 세력이 커 보이면 막무가내 그쪽에 붙어 덩달아 날뛴다. 선거공약이 빌 공(空)자 공약으로 마무리되어도 ‘그럴 수 있다’고 순순히 받아들인다. 제발 이젠 양떼 노릇에서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