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과 후생 그리고 세대교체
2013-11-07 최동철
소위 ‘어른의 나이’에 이른 지도자라면 스스로의 불합리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세와 인정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 외에는 이 만큼 할 사람이 없다’는 우론(愚論)에 빠져 자칫 자리를 독점하고자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오류를 정당화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악용 또는 오용한다. 이는 결국 독선이나 독재로 나타난다. 34년 전 불상사로 끝난 박정희 5, 6, 7, 8, 9대 대통령이 연상되는 이유다.
앞선 강물이라 해서 새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강물은 뒷물이 밀어 바다에 이른다. 새롭고 활기 찬 힘이 낡고 쇠퇴해가는 힘을 밀어내는 것이다. 즉 신진대사는 세상사의 자연스런 이치다. 따라서 구시대적 인물이 바뀐 새 시대의 흐름을 알아차려 제 발로 물러가면 순리에 따른 것이 된다. 가장 이상적인 세대교체다.
후생가외 (後生可畏)라는 고사도 마찬가지다.
자기보다 먼저 태어나서 나중에 태어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은 선생(先生)이다. 자기보다 뒤에 태어났지만 지식과 덕망이 뛰어난 사람은 후생(後生)이다. 그런데 이 후생은 장래 계발될 무한한 가능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가히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논어 자한편(子罕篇)에 나온다.
예서 외(畏)란 ‘두렵다’ ‘무섭다’란 뜻이 아니고 존경하고 주목할 만한 것을 말한다. 즉, 공자가 뒤에 태어난 후생들에게 무한한 기대를 걸고 한 말이다. 특히 그의 여럿 제자 중 그보다 서른 살이 아래이나 재주와 덕을 갖추고 학문이 뛰어났던 안회(顔回)의 훌륭함을 두고 이른 말이라고 한다.
자신의 ‘이 만큼의 업적’보다도 더 잘할 수 있는 후생들은 예상할 수 없을 만치 많다. 공자는 이를 이천 오백여년 전에 이미 간파하고 깨달았다. 그래서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아집과 탐욕에 젖어 나아가고 물러날, 제 때를 알지 못하고 우행(愚行)을 일삼는 우리네와는 차원이 달랐다.
후생가외는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후생각고(後生角高)’라는 말과도 같은 뜻이다.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훨씬 나을 때 ‘후생각고’라고 한다. 따라서 ‘청출어람(靑出於藍)’과도 같은 의미다.
어느 누구든지 ‘보은군 발전을 위한 일꾼이 나 이외는 결코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