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연구원에서 주방장으로

그리고 “용봉탕의 대중화 선언”

2013-10-10     김인호 기자
“용봉탕이 자라와 닭으로 조리하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입니다. 임금님이 드셨다는 용봉탕은 붕어 또는 잉어와 닭으로 조리한 것입니다. 닭은 조리할 때 비린내가 납니다. 붕어 또한 비린내가 심하지요. 그런데 둘을 같이 삶으면 비린내가 없어지고 고소한 맛과 냄새로 바뀝니다. 여기에 황기, 밤, 대추 등 10여 가지 한약재를 넣어 8시간 이상 달이면 맛있고 영양만점인 ‘어계탕’ 즉 용봉탕이 탄생합니다.”
보은읍 교사리 원예협동조합 앞에서 ‘진어계탕’집을 운영하는 보은 토박이 진수헌씨(50)의 이력은 이채롭다. 동광초, 보은중, 세광고, 아주대 전자공학과(82학번)를 나와 대기업 연구원으로 사회 첫발을 디딘 그는 입사 수년 만에 연구원 생활을 접는다.
“대기업을 들어갈 때 마음은 사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4년 정도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사업에 대한 경험을 쌓기 위해 중소기업인 무역회사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연구원으로 재직 시 별명이 ‘3초맨’이라는 일화도 들려줬다. “LG연구원으로 입사하면 전통적으로 신입사원 환영회가 있습니다. 당시 연구원 120명 중 60여명이 이 환영회에 참석했는데 신입이 완전 술에 취할 때까지 소주잔을 계속 돌리는 룰에 따라 두 바퀴 120잔을 받고도 막바로 상대에게 잔을 넘기다보니 저보고 3초라고 별명을 붙여 두더군요.”
대기업 샐러리맨에서 제품시험기계를 들여와 한국에서 파는 중소기업으로 픽업된 그는 미국을 갈 때는 본사에서 공항에 캐딜락을 보내 영접할 정도로 한때 잘 나가기도 했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청주로 이사를 온다. 그곳에서 컴퓨터 학원, 음식점 등을 운영하다 미국 괌으로 해외이민을 선택하지만 험난한 여정이 그를 맞이한다.
“90년대 말 IMF 파고를 넘지 못하고 1년 반 만에 사업을 중단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다루기가 어려웠습니다. 괌은 아이들을 위해 가게 됐어요. 이민 후 두부공장들 차리고 싶었지만 괌이란 곳이 이민자가 뭔가를 하기엔 제약이 많이 따르더군요. 대신 전직 경험을 내세워 컴퓨터 학원을 한다하니 쉽게 내주더라고요.”
그러나 이 역시 3년 만에 태풍 매미를 만나 피해를 보고 복구에만 1년이란 열성을 쏟기도 했지만 5년간의 괌 생활을 과감히 청산했다. 그리고 7~8년 전 보은으로 짐을 꾸린다. 보은에서 다시 컴퓨터 가게를 열었다. 2개월 전에는 ‘진어계탕’이란 상호로 평소 하고 싶던 음식업종에 몸을 던졌다.
“제 성격이 아닌 것은 아닌 가 봅니다. 그러다보니 직업도 자주 옮겼고. 그래도 아직 젊을 때 하고 싶은 것 해야지 성공도 바라볼 수 있고 후회가 남지 않겠죠.”
그가 간판으로 내건 진어계탕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진어계탕의 ‘진’은 제 성을 딴 것이기도 하지만 한자일 땐 참진(眞)’ 등 여러 뜻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로 ‘진’을 표현한 것입니다.”
진 사장이 요식업에 뛰어 든 것은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아버님이 고속도로 휴게소 소장을 하시다보니 대학교 때 자연스럽게 주방보조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된 것 같습니다. 아버님도 요리 쪽에 관심이 많으셨고요.”
그는 식당으로 크게 돈 벌고 싶은 욕심은 접었다. 꾸준하게 열심히 하면서 여러 사람이 어계탕으로 영양을 보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진 사장이 선보이는 어계탕은 3대째 내려오는 집안 보양식품이다.
“동의보감에 찾아보니 붕어는 당뇨와 혈압에 좋다고 나와 있더라고요. 저도 사실 몸이 안 좋은데 어계탕을 자주 먹다보니 당뇨와 혈압의 수치가 현격히 낮아졌습니다. 붕어값이 비싸 원가가 높지만 음식가격을 굳이 많이 받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도 듭니다. 여러 사람이 애용해 건강에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보은대추 축제 시 음식품평회에도 나갈 예정인 이 집의 어계탕 가격은 6000원, 붕어찜은 1인분에 1만원, 새뱅이 찌개 7000원을 받는다. 비린내가 없고 깔끔하면서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김치와 깎두기 등 밑반찬도 손수 담근다. 연락처 543-5110, 010-2414-3355.
/김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