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 배신 그리고 보은

2013-07-11     최동철
국어사전에 의리(義理)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고 나와 있다. 배신(背信)은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것’을 말하고 보은(報恩)은 ‘은혜를 갚는 것’을 뜻한다.

이중 의리는 봉건군주제도가 확립된 이후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사상이 됐다. 즉, 군신사이의 의리, 부모에 대한 의리, 가족에 대한 의리 등이 강조됐다.

또한 사회생활의 변천에 따라 의리는 ‘신의를 지켜야 할 교제상의 도리’ 등의 개념으로도 변했다. 따라서 '저 사람은 의리가 있다'식의 존경 의미로 사용되는 의리는 우리나라에서 건달세계 뿐만 아니라 각계각층 모든 이들이 중히 여기는 쓰임말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의리는 ‘자기희생’ ‘불이익 감수’가 필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관운장은 ‘의리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도원결의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유비의 생사가 불명한데도 형수 보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조조에게 항복하는 처지임에도 유비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뢰지 않고 떠날 수 있다는 조건을 걸기도 했다.

조조는 관운장을 제 슬하에 두기위해 천하의 명마 적토마도 주저 없이 주었다. 갖은 보물과 재산을 아낌없이 하사했다. 관운장이 맘만 돌리면 출세는 일사천리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은 의리뿐이었다. 원소의 맹장 안량과 문추를 죽임으로써 보은했다고 생각한 관운장은 결국 길을 막는 조조의 장수들을 죽이면서 유비 찾아 천리 길을 떠났다.

반면 배신의 상징은 여포를 내세웠다. 사실 여포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장수 중 최강의 무예를 가진 인물이었다. 관운장조차도 여포의 맞상대가 되지 못했다. 애초 형주자사 정원의 양아들이었던 여포는 동탁의 부하인 이숙이 적토마를 비롯한 황금, 옥대 등 뇌물과 출세를 보장하자 의부(義父) 정원의 목을 베어 동탁에게로 갔다.

동탁은 감지덕지해 여포를 양아들로 삼았다. 그 후 사도 왕윤의 미인계에 걸려든 여포는 또 다시 의부 동탁을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다. 이후 갈 곳 없는 여포는 유비에게 피신했다. 그리고 의리를 베푼 유비에게 보은은커녕 배신하여 내쫓은 뒤 서주를 독차지해 버렸다. 그래서 의리부동(義理不同)의 전형이 됐다.

보은군내 한 늪지에 개구리와 두꺼비 무리가 살았다. 서로 간 이질감은 있지만 지도자는 공동선출하여 늪지를 관리했다. 문제는 숫자가 많은 개구리 무리가 선거 때만 되면 후보로 나서겠다고 서로 다투는 것이었다. 지난번에도 이 과정에서 무리에 따돌림 당한 입 큰 개구리가 있었다. 갈 곳 없던 입 큰 개구리에게 두꺼비 왕과 그 무리는 의리를 베풀었다.

개구리들은 ‘배신’이라고 낙인찍었지만 두꺼비 무리의 지원을 받은 입 큰 개구리는 지도자로 선출됐다. 그리고 또 선거 때가 됐다. 마침 입 큰 개구리를 돕던 두꺼비 왕은 병이 들어 눕게 됐다. 약삭빠른 입 큰 개구리는 양 쪽 어디에도 눈치안보는 개구리가 되겠다며 두꺼비 무리를 뛰쳐나왔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의리, 배신 그리고 보은’의 의미를 되새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