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중 척추 다쳐 3년간 방안생활”
상이군인 김용구씨
1999-06-05 보은신문
전쟁이 끝난 직후에 군 생활을 하던 김용구씨는 전쟁으로 끊어진 통신장비를 연결하고 정비하고 또 전봇대를 설치하는 등 힘든 군 생활이 지속되었다. 군에 입대해 4년이 지나던 해 전봇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척추가 부러지는 대형사고였다. 군대생활 중 결혼을 해서 집에 혼자 남아있는 부인에게는 청천벽력의 소식이었다. 1년간 육군병원에서 꼼짝도 못하고 치료를 받다 완치도 안된 상태에서 50개월만에 제대를 했다.
바깥출입을 전혀 하지 못해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등 힘겨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내장 쪽에도 이상이 있는지 배가 임신한 사람처럼 부어 올라 김용구씨의 부모와 가족들은 귀동냥으로 들은 민간요법은 전부 사용했지만 그 때마다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김용구씨는 아파도 도저히 살수가 없다는 생각에 죽을 각오로 비상약을 먹었는데 이상하게도 병세가 호전돼 어느 샌가 몸이 가쁜하게 나았다. 제대한 지 3년만이다.
그래서 숟가락, 솥 등 기본적인 살림만 가지고 보은읍 죽전리로 분가했다. 남의 땅이지만 그때부터 죽기 살기로 농사를 지었다. 70년대 초에는 다른 농민들이 거의 하지 않는 수박, 오이, 배추 등 특수작물 재배에 눈을 떴다. 수확한 작물은 부인이 직접 시장에 내다 팔아 가계형편이 조금씩 나아졌다. 당시 그의 농장은 특수작물 재배방법을 배워가는 견학장이 되었다. 남이 잘 때도 일을 하는 부지런한 근성덕분에 그리 큰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3남2녀의 자녀들에게 고등교육까지 가르칠 수 있는 여력이 되었다.
큰 재산 없이 하천부지에 겨우 마련한 주택이 수해때 산사태로 매몰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보훈 가족들의 도움으로 주택의 형체를 갖춰 그나마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군대에서 얻은 병과 싸워 자신의 삶을 개척한 김용구씨는 70가까운 노령에도 채소장사를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천사 같은 부인과 함께 호국보훈의 달 6월의 영령들을 보듬고 있다.
<여기이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