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동학후손이라고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조부는 충(忠), 부친은 효(孝), 받들며 살아온 이창순(87)옹
2013-05-02 박진수 기자
지금은 청주에 살고 있는 이창순(87세)옹. 고향은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황토말)로 부친은 이경제옹, 조부 이원식옹은 한평생 충과 효를 실천하는 삶을 살다가 돌아가셨다며 말을 이었다.
“조부 이원식옹 1893년 접장으로 동학에 참여하다”
이창순옹의 조부 이경제옹은 그의 부친 이원식옹이 6세때 1895년 2월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1895년 4월 충주부옥에 동학군으로 가담하여 옥중이라는 사실을 통보받고 같은 동네 이구식외 2인과 함께 충주를 찾아가 상봉하니 부친의 피골이 상접되어 뵈옵기 민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당시 나라의 살림이 빈곤하여 옥중 죄인들에게 밥을 먹이지 못한 연고로 이를 보다 못한 부친 이경제옹이 충주에 남아 문전걸식 해 사식제공으로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같은 옥중에 있는 사람들이 연고가 없어 대부분 굶어서 죽은 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창순옹의 부친 이경제옹은 부친 이원식옹을 살리기 위해서 낯선 충주에 홀로 남아 문전걸식 동냥으로 부친을 보살폈다고 한다. 1년여동안 부친 이원식옹의 옥중을 오가며 목숨을 연명하는 이경제옹의 효도에 감동한 인근 마을 사람들과 옥중을 지키는 사령들이 감탄해 충주부사가 이 사실을 알고 감동한 나머지 부친 이원식옹과 즉시 귀향토록 하였다고 한다.
이창순옹의 부친 이경제옹의 효심이 동네 사람 모두 감탄하게 되었고 18세에 능성 구씨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슬하에 4남2녀를 두었는데 이창순옹은 셋째로 태어났다고 한다.
이창순옹의 조부 이원식옹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루셨다. 조부이신 이원식옹께서는 접장으로 1893년 동네 주민 4명과 동학농민전쟁에 참여했다가 괴산군 청천으로 피신하셨다가 충주로 향하던중 붙잡혀 충주부옥에 옥고를 살게 되셨다고 이창순옹은 어릴적 부친으로부터 귀담아 들었다고 한다.
당시 동학에 참여한 조부 이원식옹은 부패한 탐관오리와 궁핍한 백성을 더욱 호독하게 만드는 외세앞에 나라의 존망을 걱정하며 앞장 서셨던 의로운 행동이 이제 자손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할아버지라며 기뻐하시는 이창순옹의 모습은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조부와 부친 막노동으로 생계이어”
막상 고향으로 돌아온 부친 이경제옹과 조부 이원식옹께서는 문전옥답은 오간데 없어 지금의 원남리 인근에 금광을 찾아가 막일로 생계를 이으며 동학에 참여해 옥고를 살았다는 조부의 행적에 대해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세월을 사셨다고 한다.
동학에 가담했다는 연고로 하루 아침에 없어진 문전옥답은 사라졌지만 슬하에 4남2녀를 키우기 위해 금을 캐는 광산에서 막노동으로 조부와 부친이 흘린 땀이 형님과 동생들이 각계각층의 최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일에 충실하는 형제자매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이제 부친이 묘비에 조부의 동학 행적 남겼다”
삼승면 선곡리에 위치한 부친 선영에는 지난 2000년 3월 이창순옹의 부친 이경제옹의 묘비를 세우며 묘비에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던 조부 이원식옹의 ‘제포구민과 척왜척양창의’ 의로운 뜻을 세겼으며 부친 이경제옹의 지극한 효행을 기록으로 남겨 대대손손 충과 효를 마음속에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져 있다.
이제 조부 이원식옹의 동학에 참여했던 기록을 찾기 위해 동학관련 행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이창순옹은 충북대학교 사학과 신영우 교수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병규 학예사를 만나 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부푼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
이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병규 학예사는 “우선 이창순옹의 조부 이원식옹에 대한 동학참여자 명단확인 및 충주부옥 사실에 대한 근거를 찾는데 주력할 것” 이며 “조부의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을 토대로 유족등록을 추진해 나갈 계획” 이라는 희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특히 함께 자리를 했던 충북대 신영우 교수는 “보은지역의 대부분의 동학 참여자들은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후손들의 당시 상황 때문에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며 “조부나 증조부의 동학에 참여한 행적에 대한 아주 작은 이야기라도 후손들이 적극적인 증언을 통해 동학유족을 찾을 수 있다” 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조부의 충, 부친의 효 이젠 자녀들에게 전수되길”
이창순옹은 1989년 3월 1일 보은군 교육장으로 발령을 받아 만 2년간 군내 교육행정을 맡은 바 있으며 보은상고 교장으로 재직하다 1992년 9월 퇴직했다.
교육계 수장시절 일선교사들의 고충을 몸소 체험하는등 학생들의 밝은 마음을 읽기 위해 직접 찾아다니는 행정을 펼친 것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특히 현재의 교육청 청사를 신축한 장본인으로 교육계 특색사업으로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기, 선생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웃어른 및 도움을 받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편지쓰기 등 은혜를 깊이 느끼지 못하는 요즘 어린이들의 정신교육을 위해 지은(知恩), 감은(感恩), 사은(謝恩)하는 보은(報恩)정신 함양교육을 시작한 당사자로 알려져 있다.
이창순옹의 이러한 교육계의 열정은 장남인 이학래(56)씨로 이어져 현재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어 부친 이창순옹의 교육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삼승초등학교 시절 동기동창으로 만난 부인 송재원(87)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으며 삼승면 우진리에 위치한 농장관리를 위해 87세의 고령에도 보은을 자주 찾고 있다.
/박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