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핫바지들’

2012-12-06     최동철
자기주장이나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를 때 ‘바지저고리’라고 한다. ‘핫바지’ 또한 아는 것이 없고 사리에 어두운 어리석은 촌사람을 낮잡아 지칭할 때 쓰인다.

핫바지는 원래 옛날 서민들이 겨울에 입던 방한용 바지를 말했다. 솜을 넣고 누빈 옷이 ‘핫옷’인데 윗옷은 핫저고리, 아래옷은 핫바지라 했다. 핫바지를 입으면 따뜻하기는 했으나 둔탁해 보였다. 그래서 촌스러운 사람이나 무지몽매한 사람을 얕잡아 부르는 대명사가 됐다.

이 ‘핫바지’를 가장 유효적절하게 활용한 정치인이 있었다. 지난 14대 대통령 선거출마를 위해 민자당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던 김종필 총재다. 이른바 ‘충청도 핫바지론’을 내세웠다.
내용은 이러했다. 충청도 사람들은 매번 영남과 호남출신 정치지도자들만을 지지해왔다. 그러다보니 선거가 끝나면 늘 괄시받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나마 대접을 받으려면 영남과 호남처럼 똘똘 뭉쳐야 하는데 충청도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고 했다. 이러니 ‘충청도 핫바지’라고 놀림을 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심이 도발된 충청인들은 똘똘 뭉쳤다. 충청도 전역 거의를 녹색물결로 출렁이게 했다. 그렇다고 충청도가 크게 대접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자유민주연합 소속 정치인들만큼은 쉽게 입신양명할 수 있는 텃밭이 됐다. 그 뒤로 ‘핫바지’는 충청도 정치인들이 선거를 위한 민심을 움직이는데 써먹는 단골메뉴가 됐다.

충청도 뿌리를 표방하며 이어 창당한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심대평 대표도 ’핫바지‘ ’홀대‘ ’찬밥‘론 등을 내세웠다. 지역감정을 노골적이다시피 자극하면서 충청인의 단결을 유도했다. 또다시 뭉쳤다. 18대 총선에서도 충청도 지역 대부분을 자유선진당의 상징 색깔인 하늘색으로 물들였다.

지난 4?11 제19대 총선에서도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는 '핫바지론'을 거론하며 충청권 단결을 호소했다. ‘양당의 오만과 권력욕과 지역을 볼모로 하는 지역 패권주의 때문에 국민이 절망하고 그중에서 충청도가 가장 피해를 많이 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 아들, 딸들에게는 더 이상 충청도 홀대니 무슨 소외니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겠다. 우리 아들, 딸에게 결코 핫바지 유물을 물려주지 않게 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겨우 5석을 얻었다. 참패였다. 이인제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후 선진통일당으로 개명했다. 이어 새누리당과 합당했다. ‘핫바지’노릇 그만하자며 내세웠던 충청정당은 해산됐다.
그리고 김종필, 이회창, 이인제 등 내로라하는 충청도의 정객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새누리당으로 몰려갔다. 지지기반이자 대접받게 해주겠다던 충청인 즉 ‘핫바지’들은 나 몰라라 내팽겨진 채였다. 그들 역시 ‘핫바지’였음을 만천하에 입증했다.
진면목을 보는 데는 이처럼 세월이 더 흘러야만 알 수 있는 게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진정성도 그럴 것이다. 겉만 보거나 화려한 미사어구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핫바지’소리 듣고 싶지 않거든 제대로 보려고 집중하자. 그러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