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위(無爲)의 덕을 갖췄을까’
2012-11-29 최동철
덕이란 은연중 복잡한 면이 있다. 일반적인 덕은 인간의 삶에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바람직한 인격과 그 인격의 발현으로 나타난 결과를 뜻한다.
덕(德)의 원래 글자는 덕(悳)이다. 이는 곧 ‘얻다’의 ‘득(得)’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허신(許愼)은 덕을 ‘밖으로 다른 사람에게 바람직하고 안으로 나에게 획득된 것’이라 했다. 그리고 단옥재(段玉裁)는 주석에서 ‘안으로 나에게 획득된 것이란 몸과 마음에 체득된 것이요, 밖으로 다른 사람에게 바람직한 것이란 다른 사람이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중국의 철인 장자(莊子)는 ‘천지를 근본으로 삼고, 도덕을 중심으로 알며, 무위(자연에 따라 행하는 것)를 불변의 도리로 여기는 것이 제왕의 덕이라고 보았다. 오직 무위해야만 만물이 자연히 성장하고 천하가 돌아와 복종하며, 재물이 넉넉해진다는 것이었다.
반면 평범한 사람들이 갖는 ‘인위의 덕’은 정신과 육체를 수고롭게 하고 세상을 혼란케 하며, 세상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제왕은 반드시 무위의 덕을 갖춰야 천하를 부리고 성과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봉건시대 제왕은 오늘날 ‘권력의 중심’을 의미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조항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 중심제의 우리나라 정치체제에서는 대통령이 실제적 권력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 등 용어는 그래서 생긴 말이다.
이는 결국 대통령 후보들이 ‘무위의 덕’과 ‘인위의 덕’, 둘 중 어느 쪽을 갖췄는가에 관심을 갖게 한다. 선택의 잣대가 될 수도 있다. ‘덕의 정치’를 펼칠 것인가, ‘힘의 정치’를 할 것인가 미리 예단해 볼 수도 있다.
권력과 힘에 의존하는 인위의 덕을 지닌 제왕적 통치행위를 빗댄 프랑스 우화가 있다.
어린 양이 맑은 시냇물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늑대가 다가왔다. "내가 마실 물을 네가 흙탕물로 만들었지" "저는 늑대님보다 스무 발 짝이나 시냇물 아랫 쪽에 있으니 물을 더럽힐 수 없습니다" 어린 양이 공손히 답변한다. "그래, 그런데 작년에 네가 나를 비방하고 욕한 것을 알고 있어" 늑대는 다른 트집을 잡는다. "작년이라면 저는 엄마 젖을 먹으며 말도 못할 때였습니다"고 어린 양은 대답한다. "하지만 네 부모나 형제가 그랬을 것이 분명하니 분풀이를 해야겠다"고 말을 마친 늑대는 어린 양을 잡아먹는다.
인위의 덕을 갖춘 권력자는 법과 정의에 대해 자기는 제외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해관계에 따라 원칙없는 주관적 판단을 한다. 온갖 것이 썩는다. 사욕에 빠진다.
무위의 덕을 갖춘 지도자는 무리함이 없다. 강물은 저절로 흘러가게 둔다. 농심, 민심은 천심(天心)이니 저절로 생겨나게 둔다. 정의롭고 평등하다. 태평시대가 열린다.
누가 ‘무위의 덕’을 갖췄을까, 난무하는 말잔치에 현혹됨이 없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