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
2012-11-15 최동철
보은군 내에서도 일부이지만 이와 같은 군민 간 골육상쟁이 펼쳐지고 있다. 엘피지(LPG)복합화력발전소 추진 건을 둘러싸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한 쪽은 타 지역에 건설된 발전소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주변 피해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밝혀진 바 없다’며 보은군 발전을 위해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한 쪽은 산성비와 수증기 피해가 우려되고 송전고압선 주변 전자기장 발생으로 질환발생 등도 예상된다며 ‘발전소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유치를 반대한다. 스피커 장착 차량까지 동원해 각 면의 부락을 돌며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한다. 차량 측면에는 ‘거짓말하는 보은군수는 발전소유치 신청 철회하고 군민에게 사과하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다.
보은군민체육대회에서도 반대집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맞서 찬성 측도 계획이 있다. 찬성집회는 이미 한 차례 열었다. 곧 유치추진위원회도 구성해 본격적인 유치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태워버리자는 맞불이다. 찬반세력으로 편을 갈라 이쪽이 지든 저쪽이 지든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불 타고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 단지 서먹하고 응어리진 마음들만 남게 된다. 모두 그걸 안다. 그러면서도 의견교환이나 타개책을 모색해 볼 아량에 인색할 뿐이다.
소통이란 것은 먼저 상대방 입장을 헤아려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예 들으려 조차 하지 않으면 단절이다.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지금이 그 지경에 이른 때다. 이쯤에서는 총명이 쓰일 데가 없다.
한비자(韓非子) 설림편(說林篇)에 노마지지(老馬之智)가 나온다.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이 명재상 관중을 데리고 고죽국을 정벌했다.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이 진퇴양난에 빠져 추위에 떨게 됐다. 관중이 말했다. “이럴 때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났다.
발전소 유치와 관련해 지역의 민심이 나눠지면서 소모성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찬성이냐, 반대냐, 어떤 주장이 옳을지 여부는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더구나 발전소 추진 사업주체가 주무관청에 의해 선정될지 여부도 아직은 미지수다.
결국 확신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그런데 돈쓰고 핏대 세우며 서로 언쟁을 한다. 미궁에 빠졌던 제나라 군대를 살렸던 것처럼 늙은 말의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