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쓴웃음을 짓는다’

2012-10-11     최동철
엊그제 있었던 한글날(10월9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률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에 상정됐다. 이로써 국경일이지만 공휴일이 아닌 한글날이 내년부터는 다시 공휴일로 지정될 게 거의 확실하다. 한글날은 원래 1949년 국경일로 지정된 공휴일이었다. 그러다가 연중 쉬는 날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1991년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다시 2005년 국경일로 복귀됐지만 공휴일로는 여태껏 지정되지 않고 있었다.

한글의 전신인 훈민정음은 1443년(세종 25년) 완성되어 1446년(세종 28년)에 반포됐다. 그리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특히 유네스코에서는 ‘세종대왕 상’을 제정해 매년 세계의 문맹률을 낮추는데 기여한 개인과 단체에 상을 수여하고 있다.

세계 유수 언어학자들은 한글을 극찬한다. 미국의 언어학자 로버트 램지는 ‘한글보다 뛰어난 문자는 세계에 없다. 세계의 알파벳이다’고 했다. 레드야드 교수도 “한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의 사치이며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문자”라고 강조했다.

영국의 문화학자 존맨,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사세 교수도 각각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 ‘세종대왕은 서양보다 500년이나 먼저 음운이론을 완성했다. 한글은 전통 철학과 과학 이론이 결합한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듯 우수한 한글로 우리나라 지도층 사람들이 한다는 것은 고작 ‘한글이 무시된 외국어 남용’이거나 ‘외국어 한글표기’뿐이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내국인조차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쪼가리’표현들이 산재해있다. ‘좋아you보은’ ‘레인보우영동’ ‘your옥천’ ‘good choice 보은’ 등이 대표적 예다. 만약 당신이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겠는가. 또는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 뜻을 이해하겠는가.

외래어도 아닌 외국어가 사회 곳곳에 난무하고 있다. 농촌지역 자치단체나 기관, 단체도 정책 이름이나 정책에 대한 설명에서 영어의 남용이 심각할 정도다. 불필요한 영어를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불완전한 영어 조어가 빈번하다. 심지어 교육기관에서도 줏대 없이 한글 사용의 취지를 훼손하고, 부적절한 외국어를 자랑스레 표기할 정도가 됐다.

이러한 외국어 남용의 전반적인 분위기 조성은 이른바 ‘아륀지 정권’(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오렌지’를 ‘아륀지’로 발음했던 데서 비롯된 조어)인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북한의 핵포기와 경제지원, 안전보장을 ‘일괄타결’한다는 내용의 북핵 정책을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대통령의 설명을 듣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정리했다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일괄타결의 또 다른 표현은 ‘원샷딜’, 일자리나누기는 ‘잡셰어링(Job Sharing)’, 친기업은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4대강 개발과 주변정비 사업은 ‘녹색뉴딜’로 정의했다. 윗분의 취향은 곧 유행처럼 번지게 됐다. 각종 정책에도 영어식 이름은 물론 ‘안전 Dream’ 등 한글과 영어를 자의적으로 섞어놓은 신조어들이 마구잡이 사용됐다. 세종대왕께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