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주민들 칭찬 금반지까지 제공"

효부 서옥순씨(52)

1999-03-20     송진선
삼승면 내망1리의 서옥순씨(52) 동네 할머니들이 모두 효부라고 칭송을 하지만 본인은 극구 제부모 모시는게 당연한 도리지 무슨 효부냐고 효부리는 칭호얻기를 사양한다. 동네 사람들은 1년반이상 대소변을 가리는 일등 병시중을 들면서도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효성을 다하는 모습이 요즘 젊은이들에게 모범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마을 할머니들이 금반지까지 선사하며 서씨의 효성을 칭창하지만 돌아가신 지 겨우 한 달 밖에 안됐는데 시어머니를 팔아 내이름을 얻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사양한다.

전북 고창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서옥순씨가 일가 친척하나 없는 삼승 내망의 남편 이성범씨(61)에게 시집온 것은 18살의 어린 나이이다. 서울의 단 칸 셋방으로 살림을 난 서옥순씨는 남편 이성범씨와 구둣방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운기술로 구두굽을 교체하는 등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갔다. 호사다마라고 했든가 겨우 마련한 주택이 무허가 주택이어서 헐리게 되었고, 가게까지 남의 손에 넘어가 빚잔치만 하고 다시 삼승면 내망리로 이사를 했다.

땅 한평 가진 것 없이 전기는 물론 물도 없는 빈집을 얻어 생활하던 서옥순씨는 봄에는 고사리를 뜯고 영지버섯을 따고 가을에는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들어 팔아야만 겨우 생활을 유지했다. 보은은 물론 옥천 청산 등 안 가본 산이 없을 정도로 산을 훑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인 남편이 산 아래까지 오토바이로 데려다 주면 서옥순씨는 혼자서 높은 산을 다니면서 무서움도 모르는 채 생활의 밑천인 고사리며 버섯 등을 채취하느라 하루해를 보냈다.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제사는 물론 일가 친척, 시형제들의 대소사까지 챙기는 등 맏며느리가 아니면서도 그 역할까지 도맡아 했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가 당뇨병으로 97년부터 아예 몸져 누웠다. 대소변을 가리는 일부터 씻기는 일 등 서씨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결국 본인 마저 두 번의 수술을 요하는 큰 병이 생겼으나 병석에 누워있는 시어머니 걱정에 도시의 전문 병원에 입원하지도 못하고 보은의 모병원에 입원, 치료를 했다.

힘든 일은 하지 말고 장기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의사가 소견을 밝혔으나 10일 가량 입원하고 퇴원한 후에는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몸으로 다시 힘든 병시중을 드는 바람에 재발, 또다시 수술을 받아 지금까지도 완쾌되지 않았다. 그런 서옥순씨의 본(本)을 받은 슬하의 아들 둘, 딸 둘 모두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해 마을 사람들도 "그 집 자식들 효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워 사주나 택일에 일가견에 있어 동네사람들의 일을 많이 봐주는 남편 이성범씨는 자신에게 시집와 고생만 한 부인 서옥순씨에게 그 고마움을 어떻게 갚을 수 있느냐고 애처로워 한다. 그런 남편을 내조하는 서씨는 그동안 자신의 고생스런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단 한 번도 『내 팔자야』를 찾아보지 않을 정도로 삶을 순응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하늘이 내려준 천사인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