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2012-04-19     보은경찰서 삼승파출소 정진오 경사
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고사성어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집 가훈으로도 삼고 있습니다. 역지사지 뜻을 한글사전에서 찾아보면 처지를 바꾸어 생각함, 또는 상대편의 처지에서 생각해봄이라고 풀이해 놓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서로간의 입장 차이도 좁혀지고 갈등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제가 가입한 운동 동호회 모임에서 서해안에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개최하는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동호회에서는 친목도모 차원에서 전국 지자체 등에서 개최하는 대회에 1년에 두 차례씩 단체로 출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리가 불편함에도 오랜만에 동호회원들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마음껏 쐬며 운동과 담소를 나눌 생각에 가슴이 설레어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새벽에 관광버스를 타고 서해안으로 향했고 대회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던 중 염려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관광버스 내 음주가무 행위였습니다. 나 같이 음치, 몸치이고, 더구나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관광버스 내 음주 가무행위는 처음 한 두 번은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상습(?) 행위는 저에겐 스트레스입니다.
대게 누구나 한번쯤은 학창시절 수학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어려운 문제를 칠판에 써놓고 학생들에게 풀어 보라고 한사람씩 지명할 때 혹시나 나를 시킬까봐 선생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얼굴을 땅을 향해 푹 쑤셔 박고 조마조마하며 수업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속으로 간절히 빌어본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가끔 위 사례와 버스 안에서 사회자가 노래를 부르라고 지목하는 행위와 비슷한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회를 마치고 귀향전, 출발장소에서 음주가무 요주인물 몇 명에게 관광버스 안 음주가무행위는 법으로도 금지돼 있고 교통사고 요인 행위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회원들과 대화결과 대부분의 회원들이 담소를 나누기를 원하고 있다는 여론을 얘기 해주며 차량 내 놀이를 자제해줄 젓을 2~3차례 읍소했습니다.
읍소에 처음에는 응해주는 척 하던 회원들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요주회원들이 버스 내 가운데 통로로 나와 고막이 찢어질 것처럼 크게 노래하고 춤을 추었고 앉아 있는 회원들에게도 놀이에 동참해 줄 것을 압박해왔습니다. 저는 조용히 차창 밖 풍경을 관조하며 쉬고 싶은 권리도 있다라고 외치고 싶었고, 놀이에 동참하지 않았던 저는 너무나 짜증이 나 버스에서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금 참았다가 보은에 도착해 마음이 맞는 회원들과 노래방에 가서 실컷 노래 부르고 춤춘다고 욕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꼭 차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놀아야 하는지 의문이 갔습니다. 바닷가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갔었는데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고 왔습니다. 역시사지 고사 성어가 더 절실히 다가온 하루였습니다.
경찰청에서는 교통사고 요인 중 하나인 행락철 관광버스 음주가무행위를 강력히 단속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준법정신 생활화는 선진 주민이 지켜야할 권리이자 의무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