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갚으려거든 출사표 던져라
내년 4월11일에 치러질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5개월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 날은 보은, 옥천, 영동군 등 이른바 남부3군 유권자들로부터 주권을 가장 많이 위임받은 단 1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된다. 따라서 출마를 준비 중인 예비후보들은 단일선거구가 아닌 복합선거구에서 선출되는 선량이니만큼 의정활동에 임하려는 각오 또한 남달라야 할 것이다. 즉 국정을 다루는 국회의정단상에 설 수 있게 해준 남부3군 지역과 주민을 위해 불편부당(不偏不黨)하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우선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어찌 생각해 보면 남부3군과 같은 복합선거구에서의 국회의원 선출은 묵시적 지역주민합의하에 따른 순번제식이 타당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단순한 산수 계산법으로 유권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군에서는 지역출신 당선자를 계속해서 배출할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례로 고구려, 신라, 백제 고대 삼국시대 씨족사회와 부족사회 당시에는 합의에 의한 선출제도가 있었다. 고구려에는 귀족들이 의사를 결정했던 제가회의가 있었다. 백제에는 정치를 논의하고 재상을 뽑던 정사암회의가 있었다. 신라는 화백회의가 있었다. 특히 화백제도는 왕의 세습이 어려울 때는 만장일치로 왕을 선출하기도 했다.
남부3군의 선거구 분구 논의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적도 있기는 했다. 지난 14대 국회 말 때인 95년 7월에는 영동을 분리하고 보은, 옥천을 묶는 내무부 안이 잠정 확정됐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민자당은 두 달 후인 9월, 보은, 영동을 묶고 옥천을 분리하는 안으로 재조정 했다. 영동주민이 반발했다. 가운데 지역을 떼어내어 단일선거구로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비판에 급기야 11월 당정회의와 뒤이어진 국무회의에서는 다시 보은, 옥천을 묶고 영동을 독립시키는 개정안이 의결됐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구 획정 안은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다. 전형적인 게리맨더링(자기 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정하는 것)시비를 불러일으켰다.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8대 국회 때까지만 해도 영동은 단일 선거구였다. 그러던 것이 9~12대 까지 중선거구제와 이후 소선거구제의 남부 3군이 되면서 2명을 뽑건, 1명을 선출하든 국회의원 자리는 대부분 옥천지역 출신 인사들의 몫이 됐다. 유신정권 때는 육인수(6,7,8,9,10대), 5공, 6공 때는 박유재(11대), 박준병(12,13,14대)이었고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현역 이용희(9,10,12,17,18대)가 차지했다. 그 틈새에 영동출신 이동진(6,11,13대), 심규철(16대)과 보은출신 어준선(15대)이 어부지리(漁父之利) 명색을 갖추기는 했다. 그럼에도 옥천에 비해 보은에는 이다지 인물이 없나하는 자조가 생긴다. 은근히 자존심도 상한다.
사실 보은에도 많다.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보은의 인물은 많다. 유명기업인도 있고 문화출판 사업에 성공한 이도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해외기업을 일군 이도 있고, 행정 관료로서 타의 모범이 되는 인물도 있다.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걱정하며 봉사하고 베풀며 사는 참된 인물들은 이루 다 손꼽을 수 없을 만치 많다. 단지 주변을 하찮게 보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강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 들을 적극 독려해 나서게 해야 한다. 때가 됐다. 출사표를 던지게 하고 일치단결하여 지지하는 것이 지역의 자존심을 세우고 발전을 위한 최선이다. 타 지역출신 인물을 선별 지지하고 만족해하는 것은 사대주의거나 차선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