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대변인

2011-08-18     최동철
예부터 한 지도자 주변에 자기 사람들로만 진을 치게 되면 무능한 바보가 된다고 했다. 내시들로 인의 장막을 쳤던 한나라 영제는 나라꼴이 어떤지,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조차 모른 채 십상시의 난으로 멸망했다. 방관 또는 방조 속에 측근정치를 묵인했던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이같이 뒷날 명예스럽지 못했다. ‘예스 맨’들만 우글거리니 자신의 배가 산으로 가는지 또는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게 된다.

리더십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이언 에어즈’ 미국 예일대 교수는 “리더는 ‘악마의 대변인’역할을 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자신의 정책이 어떤 면에서 잘못됐는지 설명을 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악마의 대변인이란 가톨릭교회가 한 인물을 시성할 때 반대자 역할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다. 즉 성인 후보에 오른 인물의 업적을 비롯해 여러 측면을 검토한 뒤 ‘성인의 지위에 합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이다. 조상대대로 척진 악마처럼 사정없이 흠집을 드러내고 트집을 잡기 때문에 그런 호칭이 됐다.

현명했던 우리 조상들은 이미 더 좋은 제도가 있었다. 고려시대 중서문하성과 낭사, 조선시대 사간원이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되기 전까지 그 같은 역할을 했다. 사간원은 대사간(大司諫 정3품), 사간(司諫 종3품), 헌납(獻納 정5품), 정언(正言 정6품)의 품계와 관직으로 조직됐다. 경국대전에 표기된 직무를 보면 첫째가 왕의 언행이나 시정에 잘못이 있을 때 이를 바로잡기 위한 언론이고, 둘째는 일반 정치에 대한 언론으로 논박의 대상은 그릇된 정치일 수도 있고 부당, 부적한 인사나 관행 일 수도 있었다. 즉 사간원의 제도상 직무는 왕과 정치에 대한 언론이었다.

그래서 언론을 펼칠 때는 목숨을 걸기도 했다. 직무 특성상 사간원, 사헌부(왕족 등 특권층의 내사, 비리수사), 홍문관(왕의 자문)등(3사로 불림)은 면책특권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왕권이나 정파 간 힘의 균형에 따라 파직 당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한 예로 3사의 주류였던 신진사류 사림파가 끓임 없는 간언과 권학(勸學)을 했고 이를 증오했던 폭군 연산군은 훈구파 유자광의 상소를 빌미로 피바람을 일으켰다. 이미 죽은 김종직을 대역죄로 부관참시(剖棺斬屍)했고 김일손 등은 능지처참(陵遲處斬)했다. 많은 신진사류가 희생된 무오사화였다.

중국 역사에서 직간(直諫)으로 유명했던 인물은 가난한 고아출신의 ‘위징’이다. 목숨을 건 간언은 솔직하고 곧았으며 절대 머리 숙여 굴복한 적이 없었다. 위징의 간언을 들었던 당나라 태종 이세민 또한 훌륭한 왕이었다. 그는 “정치를 하면서 저지르는 실수를 알기 위해서는 충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군주가 자신은 현명하고 덕이 있다고 여길 때 간언으로 바로 잡아주지 않는다면 나라가 곧 위기에 처할 것이다. 수나라 양제가 폭정을 할 때 신하들이 입을 닫고 진언하지 않은 탓에 결국 잘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라가 망했다. 그대들은 내가 백성에게 이롭지 않은 일을 하거든 반드시 내게 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상혁 군수 주변에 ‘악마의 대변인’역할을 할 인물은 선뜻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니 언론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고깝다하지 말고 틈 만나면 기자와 지역인사들을 만나 자문하고 비판을 듣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