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기념탑 준공을 경축하며
2010-11-11 4.19혁명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준공식 준비위원) 권인
더구나 4월 11일 마산 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됨으로써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의 노도와 같은 의거가 재차 일어나 4.19혁명의 거대한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청주에서도 4월 14,18 양일에 청주 대학생을 주축으로 청주공고, 청주농고, 청주고, 세광고, 청주상고, 청주여고, 청주여자기고 등 수 천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하다가 수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됨으로써 서울, 부산, 대구, 마산과 함께 청주가 4.19혁명의 5대 진원지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독재자의 주구들은 전국 5대 도시에 비상 개엄을 선포하고 시위대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186명의 고귀한 생명이 민주주의 수호신으로 산화하였으며 6,400여명의 중경 상자가 4월의 민주광장에 선혈을 뿌려 드디어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필자가 4.19혁명 당시를 회상해 보면 1960년 4월 14일부터 학생회 간부 김현수, 박종희, 오세억, 박상기, 박신영, 이종현, 방한명, 권인식, 심만보 등이 몇 차례 회합을 가지고 4월 18,19일에 규탄 시위를 하기로 결정하고 청주시에 소재하는 7개 고등학교 학생간부들을 설득하여 시위를 하던 중 내덕동 방아다리까지 진출하던 중 경찰과 대치하다가 경찰이 소방차를 동원 오물을 발포하는 바람에 오물을 뒤집어 쓴 채 경찰에 연행되거나 우암산 쪽으로 도망가는 등 해산을 당하고 충북 경찰국으로 연행되었다가 밤 11시경 귀가했던 일과 형사들의 감시로 하숙집에서 연금 아닌 연금되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청주가 4.19혁명 5대 진원지였으면서도 혁명 50주년이 지나도록 기념탑을 건립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여 오던 중 2007년 4월에 4.19혁명 기념탑 건립 추진 위원회를 결성하고 김현수 추진위원장을 중심으로 활동하여 충청북도, 충청북도 교육청, 청주시에서 각각 1억원씩을 지원하도록 약속받고 2010년도 예산에 반영되어 3억원의 예산으로 청주시에서 상당공원에 4.19혁명 기념탑 공사를 발주하여 11월 9일 4.19혁명 기념탑을 준공하게 되었습니다.
4.19혁명 50주년을 맞이한 뜻 깊은 해에 우리들의 숙원이 이루어져 4.19혁명의 숭고한 정신과 이념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한 단계 다가서게 되어 가슴 벅차오르는 감회를 감할 길 없으며 4.19혁명 기념탑 준공을 진심으로 경축합니다.
4.19혁명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준공식 준비위원) 권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