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운 한아름 복조리에 퍼담아줘
복조리 만드는 정기술 할아버지(내속 사내)
2002-02-09 송진선
지금은 쌀에서 굳이 돌을 거르지 않아도 될정도로 도정과정에서 돌을 거르고 있고 또 플라스틱 조리가 나와 대나무로 만든 조리를 사용하는 가정이 없다. 이제는 집안으로 복이 많이 들어오라고 현관 문앞에 자리를 지키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되는 것이 고작이다. 이렇게 사라지는 명물 중의 하나인 조리 제조자가 속리산에 딱 한분 건재하다.
정기술 할아버지(내속 사내3리). 91세나 되었지만 겨울만 되면 조리만드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경로당에 나갈 때도 조리대를 들고가서 만들 정도. 슬하의 자식들은 모두 그만 하라고 말리지만 조리를 만드는데 몰두하다 보면 아픈것도 몰라 오히려 정 할아버지에게는 조리가 약이라며 손수 속리산 법주사 뒤쪽에서 조리를 만들 수 있는 대나무를 골라 해가지고 오는 것을 매년 거르지 않는다. 요즘은 금산에서 농악놀이에 사용한다고 주문한 조리를 제시간에 만들어내느라 허리를 펼 시간도 없이 바쁘다.
정기술 할아버지는 아들 정상봉(61) · 허영자(65)부부, 손자 정갑수(37)·오미정(29)부부, 증손자 정하민(7)·정보현(5)·정하균(3)까지 정말 보기 드문 4대가 함께 사는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아마 다 복조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복을 나눠주고 집안으로 복을 불러들이기 때문일 것라고 말하는 정기술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눈이 오기 전부터 봄이 오기 전까지 대나무를 해와 4토막으로 쪼갠다.
대나무라고 해서 일반 대나무가 아니라 속리산에서 자생하는 키가 작은 조리용 죽대가 있다. 그런다음 햇볕에 2∼3일 정도 말린다. 말린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물에 1∼2시간 정도 물린다. 불린 대나무의 물기를 빼면 조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일단 준비 끝. 참, 조리의 머리대로 쓰이는 싸리나무까지 준비해야 한다.
이제부턴 씨실 날실 엮듯이 엮어 쪼갠 대나무가 50개 정도 들어가면 조리 한 개가 완성된다. 요즘도 하루 10개씩은 거뜬히 만들어내는 정기술 할아버지가 조리를 만든 것은 결혼하기 전인 25살때부터다. 경북 상주에서 부모님을 다 여의고 홀홀단신으로 속리산 민판동으로 들어온 것은 12살 즈음. 그때부터 남의 집 일도 하고 나무도 해서 팔아 돈을 모았다. 성실하게 일한 할아버지를 눈여겨 본 동네 한 할머니가 자신의 손녀에게 중매를 서 26살 때 장가를 갔다.
민판동 전체가 조리공장일 정도로 경쟁하듯이 조리를 만들었던 당시 혼자 만들다 솜씨가 야무진 할머니까지 가세하니까 1년이면 두 내외가 2500개는 거뜬히 만들어 냈고 상주, 괴산, 청주, 영동 등 안 가본 지역이 없을 정도로 조리를 팔러 다녔다. 쌀 1말에 1원할 때 조리도 1원 했을 정도로 귀했고 1년에도 여러개가 필요해 조리를 만들어 모은 돈이 엄청났다. 땅한 뙈기 없었던 정기술 할아버지가 6000평을 샀고 현금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인근에서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줬을 정도로 알부자 소리를 들었다.
80년도에는 신세계 백화점에서 초청해 서울 사람들에게 조리만드는 것을 보여줬을 정도로 조리에는 일가견이 있는 정기술 할아버지는 “조리가 정말 복조리야. 그 조리로 땅도 사고 자식도 공부시키고 출가시켰으니까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어.”하고 흐뭇해 했다. 지금은 개당 1400원씩. 속리산 기념품 판매장에서 소품용으로 주문을 해와 1년에 100개정도는 꼭 만든다. 조리를 만들어서 판 돈은 비료사라고 자식에게 내놓고 증손자에게 과자도 사주고 용돈도 주는 부자 할아버지다.
속리산 조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솜씨좋은 할아버지는 조리 뿐만 아니라 채반, 용수, 지게, 멍석 등 집안에서 쓰는 소품은 거의 할아버지가 만들었고 결혼해서 분가하는 아들과 손자들에게도 모두 세트로 선물했다. 정기술 할아버지는 “요즘같이 경제도 어려운데 복을 퍼담아 주는 조리가 얼마나 좋아. 집에 하나식 걸어두고 보면서 복받을 것을 소원하면 보는 것만 해도 즐거울 것 같아. 힘에 부치지만 않는다면 계속 만들것이야.”
증손주의 재롱속에서 항상 남에게 복받을 것을 비는 마음으로 조리를 만들기 때문에 정기술 할아버지에게 그 복이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