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50주년에 그날의 함성을 회상하며
2010-04-15 권인식
그 당시 청주대학에서도 1960년 4월 14일부터 김현수, 어세억, 박상기, 박종희, 박신영, 이종현, 방한명, 권인식, 심만보 등 학생회 간부들이 몇 차례 회의를 하여 4월 18일 4월 19일에 규탄시위를 하기로 결정하고 청주시에 소재하는 6개 고등학교(청주공고, 청주상고, 청주고, 청주농고, 청주여고, 청주여자 기공) 학생간부들을 설득하여 예정일에 청주대학생 500여명과 6개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뛰쳐나와 자유당 독재정권 퇴진을 외치면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청주경찰서와 충북 경찰국으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밤 11시경 귀가조치를 받았으며 4월 21일,22일에는 보은경찰서 소속 이재준형사가 하숙집을 찾아와서 외출을 자제하도록 하여 하숙집에서 연금아닌 연금되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4·19혁명을 전후하여 경찰의 무자비한 시위진압과 발포로 186명의 학생들이 생명을 잃었으며 6,4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함으로써 이승만대통령이 하야하고 자유당 12년 장기집권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와같이 값진 희생을 치르고 얻은 4·19혁명을 김영삼 문민정부에서 4·19의 숭고한 정신과 이념을 헌법전문에 혁명으로 명시함으로써 4·19혁명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2000년 12월 4·19혁명 공로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도록 법률에 명시하고 4·19를 국가기념일로정하여 시행해오고 있다.
4·19혁명 대열에 적극 참여하고서도 아직 포상을 받지 못한 동지들에게 포상이 되도록 보훈당국에서는 5·18 광주사태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포상을 수여한 것과 같이 형평성을 감안하여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본인은 이승망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한 후 4·19학생 시국수습 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그후 4·19연합회와 4·19기념사업회를 김현수 회장과 함께 결성하여 40여년동안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4·19혁명 50주년을 맞이하여 충북 4·19기념사업회에서는 4·19혁명의 숭고한 정신과 이념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청주시 상당공원에 충청북도 충북교육청 청주시의 지원금 3억원을 들여 4·19혁명 기념탑 건립을 6월 준공예정으로 추진하고 있다.
50년전 부정 선거를 규탄하고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거리로 뛰처나와 소리높이 외치던 그때 그 함성을 생각하면 오늘 4·19혁명 기념탑을 세우게 되는 현실에 가슴벅차오르는 감회를 금할수 없다.
아직도 4·19혁명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장착되어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지고 우리들의 숙원인 남북통일이 되는 그 날이 올때 4·19혁명의 숭고한 정신과 이념은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