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퇴임 앞둔 김중규교육장 , 교육인생 42년 6개월

2009-08-13     주영신 기자
 “뒷걸음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서운하지는 않지만 아쉬움은 남아”

이달 24일 퇴임식을 끝으로 42년간의 교육자의 길을 일단락 짓는 김중규교육장은 인터뷰내내 두손을 모으고 특유의 느린 톤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1947년 산성리에서 출생 1967년 청주교육대학의 졸업, 산외초등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한 그는 보은교육장을 끝으로 42년 6개월의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2년간의 영동중학교 교장 시절을 제외하면 40년을 보은교육과 함께한 보은교육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보은토박이치고 그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퇴임을 앞둔 심정도 남달랐을 법하다.
“그 동안 비겁하지 않게 당당히 살아왔다” “뒷걸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살았다”며 그 동안의 삶에 대한 노력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꼿꼿한 삶의 열정이 묻어있다.
교육이란 열정, 관심, 사랑의 결정체라고 정의하는 그는 “교사들의 실력은 이미 높은 수준이다”며 “이제는 학생에 대한 열정만이 교육의 승패를 좌우 한다”고 했다. 교사, 학부모, 학생이 열정으로 뭉쳐질 때만이 올바른 교육이 탄생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지역정서에 맞는 오장환 문학제나 지역축제에 학생들을 적극 참여시켜 학생들 스스로보은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그러나 교육청의 의도가 중앙정부의 지시와 상충되는 부분 때문에 학생동원으로 잘못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학교별 커리큘럼에 여유를 두는 융통성이 필요하다”며 “교육청의 의도가 간섭이 아니라 어드바이스차원으로 인식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물었다. 행복했던 추억은 쉬게 잊혀지지만 가슴 아픈 기억은 오래 남는 법이라며 1977년 겨울, 소여광산에서 석탄운반 차와 통학버스가 충돌한 사건을 이야기 했다. 아침 일찍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하여 피투성이로 쓰러져있는 담임반 학생을 수습해 대전병원을 옮겼지만, 몇 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사랑하던 학생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그 일로 한달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행복했던 기억은 보은고등학교 3학년 담임시절, 담임반 63명 전원을 일년 개근은 물론 예비고사에 합격시킨 일이다며, 이때 ‘예비고사안타제조기’란 별명을 얻었고 독하다고 ‘독사’로도 불렸다고 했다.
보은의 현안문제인 인구전출의 원인이 교육에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인구가 대도시로 빠지는 원인을 교육문제, 이농현상, 부모들의 허영심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보은에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안된다”는 부모들의 허영심이 가장 큰 이유라며 교육에 대한 투자가 상상이상으로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연중돌보미학교의 예들 들며, 학생 1인당 매년 100만원씩 3년간 투자되고 있어 결코 교육여건이 타 지역에 비해 뒤 떨어지지 않는다며, 부모들의 잘못된 생각이 도미노현상을 일으켜 문제가 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인문계고등학교 통폐합 문제에 대해서도 현재 규모로는 학생들의 특성 맞춘 세부교육이 어럽기 때문에 통합을 통한 ‘공립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 일부 오해된 부분이 있지만 재단이 교육에 대한 적극적 투자뿐아니라 “내가 다닌 학교가 아니라 우리지역의 학교”라는 대승적 차원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다.
“죽어서도 보은에 묻힐 것이다”는 그는 퇴임 후 잠시 휴식기는 갖겠지만 보은과 보은교육을 위한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참견과 간섭이 아닌 어드바이스로써 자문 역할을 통해 계속적으로 보은을 위해 일조할 것을 밝혔다.
/주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