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상
공부가 뭔지?
2009-07-30 송원자 편집위원
40대 중반에 접어든 그 친구는 여고 동창생 8명과 선운산으로 단풍놀이를 갔었다. 선운사 입구까지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어 그 곳의 별미인 풍천장어를 먹으러 갔다. 맛있는 음식과 술은 금상첨화라 그들은 술도 주문하기 위해 메뉴판을 보았다. 그 모임 총무가
“소주 먹을래? 백세주 먹을래?” 하고 의사를 묻자
한 친구 가
“어차피 먹으면 취할 걸 싼 걸로 먹자”
그 말에 내 친구도 역시 맞장구를 치며
“그래 가격도 세배나 되니 소주먹자” 라고 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두 친구가 합창하다시피 하는 말
“아니, 백세주 값이 두 배지” 하였다고 한다.
내 친구는 순간적으로 당황하였다고 한다.
‘소주의 가격은 2,000원이고 백세주 가격은 6,000인데 그 것이 두 배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 온 나의 계산법이 틀렸나?'
‘아니야! 잘 봐! 백세주 값이 소주의 세 배지! 두 배냐’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도 메뉴판을 각각 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혹시 옳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또 하나의 이유는 두 배라고 말했던 두 친구가 학교 다닐 때 자기보다 공부를 더 잘했기 때문에 망신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 소리도 못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음식이 나왔는데 입맛이 떨어져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고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아름다운 풍광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하루가 불편하고 피곤했단다.
집으로 돌아온 뒤도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아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사탕을 6개 갖다놓고 2개씩 묶음을 지어 보면서 한 배라는 것은 똑같은 것이 두 개 있어야 되는 것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고 그렇다면 지금껏 정녕 헛살아 왔던 것이 아닌가? 내가 아무리 수학을 못했다고 해도 12년간 교육을 받았는데...... 하면서 속이 타서 한숨도 내쉬곤 했단다.
또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고 한다. 6,000÷2,000을 해보니 답이 3이 나왔고, 또 검산하는 식으로 3×2,000 도 해보았단다. 그렇게 여러 가지 방법과 생각을 하면서 정말 확신이 서지 않아 남편한테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 보니 자기생각이 맞는다고 하였다.
며칠 머리 아프게 고민을 끝낸 상태에서, 선운사에서 백세주가 소주의 두 배라고 말했던 총무를 만났다고 한다.
“선운사에서 내가 술값을 보니 백세주는 6,000원이고, 소주값은 2,000원인데 백세주 값이 소주의 세 배인데 너 왜 두 배라고 했니?” 하고 물어봤단다. 총무는 그 당시의 일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 말을 했는지 조차 모른다고 했다. 총무의 그 말에 그 동안 힘들었던 시간이 무너지면서 맥이 빠져버렸다고 한다. 총무도 계산을 순간 착각한 것인데 그 것으로 인해 내 친구는 많은 시간을 힘들게 지낸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내 친구는 덧붙여 들려주었다.
“나 사실 그 날 선운사 식당에서 그 일 있은 뒤, 선운사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오늘까지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열등감을 가졌는지 몰라. 그리고 우울증까지 올 정도로 심각했어. 학교 졸업하면 학교 때 '공부 못한 거' 안 따라 다닐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아! 화려했던 옛날이여! 다시 그 날이 온다면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부를 열심히 할 건데”
그 친구의 말에 모임에 참석한 친구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우리의 열등감이 때로는 분명 확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축될 수 있다는 것과, 평소 목소리도 크고 활달하고 씩씩한 내 친구가 아주 잘 살고 있는데 이미 20여년이 지난 학창시절의 열등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 생각하거나 또는 아무 생각 없이 말 한 것이 상대방에게는 아주 심각한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평범한 아주 평범한 교훈을 되새겨 보았고, 그 열등감의 근원을 줄여주고자 자녀를 가진 부모는 공부하라고 내 아이를 닦달하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송원자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