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세에 부이사관,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임정빈 농림수산식품부 농산경영과장
우리지역 출신이 잘 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족이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는데 그저 반갑고 기쁘다. 비빌 수 있는 언덕이 생긴 것처럼 든든해진다. 한 때 12만명이 넘는 인구를 자랑하다 3만5천명을 유지하기도 어렵고 그 마저도 생산성이 높은 층 보다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고령의 노인인구 점유율이 높고 아등바등 대도 재정자립도가 10대로 전국 최하위에서 맴도는 우리지역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지역 사람들은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고 언젠가는 꼭 도움을 줄 것으라 믿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부이사관(3급)에 오른 임정빈씨에게도 지역 주민들이 기대를 걸고 있다. 보은중학교 28회, 보은농고 33회인 그는 46세 밖에 안돼 앞으로 1급, 차관 등 승승장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향 질신리에는 11촌 아저씨가 살고 있고 친구들도 보은에 많이 있어 가끔 고향을 찾아가 친구들과 만나 회포도 풀고 이런저런 추억을 꺼내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하는 그는 부인 변양희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선 ‘촌놈’의 고시 도전기
수한면 장선리에서 가난한 집안의 3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나 6살 때 보은 장신리로 이사나온 임정빈씨의 어렸을 적 꿈은 과수원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공부를 잘하던 그는 보은중학교를 나온 후에는 당연히 보은농고를 진학 것이 단계였다. 같이 실력을 겨룬 친구들이 인문계고등학교를 가서 대학교를 간다고 했을 때 그는 가정형편으로 볼 때 얼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와 생업에 뛰어드는 것이 과제였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교사가 공부를 잘하는데 왜 농고를 가나 진로변경을 권유했으나, 처음 마음을 굽히지 않고 농고를 진학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그 때 처음으로 농고를 그만두고 청주 인문고를 진학할까 진로 고민을 했지만 여의치 않아 2학년 때부터 독학으로 대입준비를 시작했다.
학과 과목의 대부분이 농업관련 과목이고 수업 시간의 상당량이 현장 영농실습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이것이 그에게 큰 고민이었지만 다행히 담임선생님이 영농실습 대신 실험실에 배치해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라면 수학과 영어과목에 대한 충분한 지도와 또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았겠지만 그는 그 반대였기 때문에 엉덩이가 방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섭게 파고들었다. 하나하나 수학과 영어과목의 실력이 향상되는 재미도 붙었다.
농고를 나와서는 대학가기 힘든 그 때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온 남들과 같이 3년간 공부를 해서 충남대학교에 입학했다. 농(農)자가 지겹지도 않은 지 전공은 농학이었다.
그의 도전은 대학입학에 그치지 않았다. 지금의 행정고시인 농업기술고등고시 합격을 목표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만만치 않은 고시과목에 취약한 영어공부까지 하려니 남들 배 이상 힘이 들었다. 아침 6시에 도서관 문을 열면 제일먼저 입실해 밤 11시까지 꼬박 거의 도서관 밖을 출입하지 않을 정도로 ‘무식하게’ 책과 씨름, 4학년 때 1차에 합격하고 졸업 후 2차에 합격했다.
취약한 교육환경을 딛고 고시 합격이라는 선물을 받은 아버지(임태수옹, 지난해 작고 )와 어머니(지난해 작고)의 감격스러워 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남다른 교육열과 면학의지로 목표를 달성하고 꿈을 실현하고 있는 그는 처음 대전시에서 수습사무관을 거친 후 1991년 4월부터 지금까지 농림수산식품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울대 틈바구니에서도 돋보여
처음 5급 사무관에서 시작해 4급, 3급으로 승진하기까지 꼭 18년이 걸린 셈이다. 빠른게 아닐까 물었더니 빠른 것이 아니라고 답했지만 보은군 직급으로 볼 때 9급에서 6급까지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일 것 같았다.
그러면 빠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주변에 맨 서울대 출신이어서 그들끼리 서로 끌어주기 때문에 서울대 틈바구니에서 승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서울대 틈바구니에서도 충남대 출신인 그가 보였던 것은 그의 업무추진능력, 기획력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잘난’ 사람들만 모인 곳에서 우뚝섰으니 그가 얼마나 노력하고 공부했는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농림수산식품부에 있으면서 농업군인 보은군은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유통회사 선정된 일부터 2007년 산대지구 농촌테마공원 조성 사업, 서원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선정 등에는 보은군수보다도 더 역할을 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공로자다. 특히 산대지구 테마공원 조성사업시 사업신청 작성에서부터 심사위원 연락처를 파악해 우리지역을 홍보하는 일에 앞장섰다.
하나 이룬 것을 과대 포장해 주민들을 현혹시키는 것이 보은군의 현실인데, 그는 공적을 오히려 쉬쉬하며 감추기 바쁘고 본인은 절대 한일이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믿음이 가고 그런 출향인을 배출한 지역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갖게 했다.
#공무원, 농민 기업 마인드배워야
그렇게 겸손한 그가 공무원 및 농민들에게 주문한 것은 기업마인드를 가지라는 것이다. 보은군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체된 업무능력을 다른 세계에 들어가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7, 80년대 까지만 해도 국가가 나라를 이끌어 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민간 규모와 역할이 커졌다며 민간 특히 기업마인드를 배워야 하는 것은 시대 흐름이라고 말했다.
보은군이 열악하다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하고 있는데, 작더라도 강한 조직 강한 사람이 돼야 경쟁력이 있는 것이고 살아남는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공무원에 대한 투자인데 투자는 연수 등도 있지만 인적 교류도 포함된다며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인사교류로 충북도간 교류를 하거나 출향인 기업체에 공무원을 파견해 기업마인드를 배우게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공무원생활을 오래하면 사고력이 폐쇄적이어서 틀을 깨기가 어려운데 6개월이고 1년이고 기업에 파견하면 기업문화를 익히고 그 안에서 마인드가 자연스럽게 바뀌고 시각도 바뀌게 된다는 것.
그렇게 공무원들이 다른 세계에서 배워와 군민들, 농민들에게 파급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민들도 열심히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 예로 자치단체를 주식회사 장성군이라고 할 정도로 기업가적 마인드가 정립된 장성군에서 찾았다.
#존재의 시대가 아닌 생성의 시대
그동안 농촌이 농산물을 생산하는 기지였다면 오늘날 농촌은 생산기지에서 휴양기지로 바뀌고 있다며 발을 맞춘 산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휴양은 도시민들이 단순히 하루 머물며 놀고 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본인이 체험을 하고 특별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한 번 가고 다시는 가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 가면 재미가 있다는 것을 보은을 찾는 관광객들이 느껴야 한다는 것.
이와함께 식품산업도 비전이 있기 때문에 보은군에만 있는 맛있는 음식을 발굴해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음식문화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제 존재의 시대가 아닌 생성의 시대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으면 글로벌한 무한 경쟁시대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죽음과 마찬가지라고 경고하며 변화할 것을 주문했다.
보은이라는 작은 시골구석에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누가 군수감이고 아니고, 또 서로 잘났다고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는 것이 넓은 도회지에서 바라보면 얼마나 하찮을까. 변화의 한가운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주문이 아직도 뇌리에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