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명산 탐방 - 삼승산 울미산

2009-02-20     송진선 기자

소금강이라 일컫는 속리산은 전국에 이름이 나 매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보은은 몰라도 속리산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우리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이다. 재산적 가치는 산정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 그 그늘에 가려있지만 우리지역을 이루고 있는 주변에 크고 작은 산, 그야말로 동네 뒷산이 있어서 보은군이라는 지역을 만들고 있다. 기암절벽이 즐비하고 봉우리 마다 전설을 안고 있는 속리산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고 우아한 능선으로 주변을 감싸고 있고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산이다. 흔히 마주하는 동네 뒷산, 산봉우리이지만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키고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듯이, 볼품없는 동네 뒷산이 우리지역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푸근하게 지역을 감싸고 있는 명산으로 이름 지어진 동네 산을 탐방함으로써 애향심을 고취시키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다지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이곳에도 등산객들의 발길이
삼승산과 울미산.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국립공원, 또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산도 아니고 그야말로 동네 뒷산인데 사람들이 찾은 흔적이 있을까. 아마도 미지의 땅에 첫발을 내딛는 탐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길을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오산이었다.  그냥 버섯 따러 다니느라 생긴 길이 아니고 아예 산행을 위해 찾은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이곳도 역시 산행지였다. 능선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방향을 안내해주는 리본형 표지(시그널)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서울소재 산악회가 많았다. 등산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국립공원을 비롯한 손꼽히는 유명산만 찾는 것은 아님이 확인됐다.

삼승산과 울미산은 사실 능선과 능선이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같은 이름의 산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했다.

삼승산∼울미산까지 전체 도상거리 8㎞. 그 길을 종주하는데 5시간이 소요됐다.
해발574m인 삼승산은 삼승면 내망리 동남쪽에 있으며 능선을 경계로 남쪽은 옥천군 청성면 능월리다. 울미산은 해발 470m이다. 삼승산∼울미산의 능선을 중심으로 삼승면 내망리∼천남리∼탄부면 성지리∼대양리와 오천리∼기대리가 위치해 있다.



#낮다고 얕잡아보면 큰 코
삼승산 산행의 출발지로 잡은 곳이 삼승면 내망1리이다.
가을이면 버섯을 채취하러 다니고 봄이면 홑잎도 뜯고 고사리도 꺾느라고 산을 다녀서인지 많은 사람이 오간 인적이 있어서 등산로를 만들며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국립공원이나 공원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산에는 턱도 없지만 그래도 등산로는 만들어져 있고, 또 산도 높지 않고 거리도 그다지 길지 않았기 때문에 넉넉잡아 4시간도 안 걸릴 것으로 예단했다.

하지만 웬걸. 처음부터 고난이도의 산행이었다. 이거 괜히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사가 급해 일행들은 거친 숨소리를 토해냈다.

산을 제대로 타기도 전에 벌써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등줄기에서도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산행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겨울이건 여름이건 원 없이 땀을 배출하면, 온몸에 시원함과 개운함이 넘친다.

카타르시스까지는 아니어도 산행하면서 얻는 기쁨이 바로 땀을 흘린 후 전해져 오는 상쾌함, 산행으로 그 쾌감이 온몸으로 번져왔다. 어느새 살짝 봄이 다가온 자연에서 마음의 문까지 열린 듯하다.

#등산로는 낙엽 융단
입춘, 우수가 지난 2월 한 중간에 지금 남아있는 겨울이 발악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봄은 오고 있었다. 산수유 꽃이라고 착각할 정도인 생강나무의 꽃망울이 노랗게 움이 텄다. 추운 겨울을 버텨왔던 나뭇가지마다 물이 오르고 잎이 움터오면 마른 산은 그야말로 초록의 빛깔로 뒤덮일 것 아닌가.

상상을 하며 산행을 하는 내내 발아래선 낙엽 밟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산을 깨우는 소리였다. 뿌리에 잔뜩 품고 있던 수액들을 빨아들여 잎이나 꽃을 피우기 위해 나뭇가지가 분주히 일을 하는 소리도 산을 깨우고 있었다.

등산로에는 낙엽융단이 깔려 있었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고 떡갈나무 잎들이 길을 만들었고 소나무 잎도 솜이불을 만들어 줘 걸을 때는 푹신함 마저 느끼게 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 밟아대 흙길이지만 흙을 밟을 수가 없는 곳이 국립공원 등산로이다. 나무뿌리가 앙상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몇 해 전인가 속리산 국립공원에서는 비닐봉투에 흙을 담아가지고 가서 뿌리가 드러난 나뭇가지에 흙을 부어 발로 밟는 행사까지도 했을 정도다.

돌무더기를 덮고 있던 흙도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 없어지면서 돌부리가 튀어나온 것이 허다하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국립공원 등산로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시달려 아픔을 겪고 있다.


#삼승산 정상에는 산불 초소가
소나무가 발산하는 피톤치드 온몸으로 받아 삼림욕을 하며 산행을 시작한 후 1시간 정도 지나서 정상에 도착했다. 한낮인데도 걷히지 않은 안개가 시야를 가려 제대로 전경을 감상할 수는 없었던 것이 제일 아쉬웠던 부분이다. 산악인들은 “가스때문에 전경을 볼 수 없다”라는 표현을 했다.

제대로 펼쳐진 전경을 보지 못하다니 이런 불운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겼고 정상에서 울미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지 얼마 안돼 보은군의 산불을 감시하는 초소가 나타났다. 보은읍, 속리산, 멀리 한중리까지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초소 앞에는 나무를 제거해 그나마 시야가 확보됐다. 뿌연 안개로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멀리 덕동리에 있는 탄부초등학교도 보이고 경지정리가 잘된 드넓은 탄부들도 볼 수 있었다.

아마 봄이 되면 황량한 그 넓은 들은 방금 모내기를 끝내 연초록 들판으로 변하고 여름이 되면 비와 햇빛을 머금고 자라 진초록의 변하고 가을이 되면 벼들이 누렇게 고개를 숙여 황금들판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면 하얗게 변한 온 세상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장쾌한 탄부들을 보면서 철마다 와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실감하고 싶어졌다.

탄부면 덕동2리 석화마을에서 매일 50분 이상 걸려 해발 574m고지의 산불감시 초소를 온다는 홍영섭(67)씨는 군내 어느 곳에서 산불이 일어나는가 보은군 사방을 경계하는 감시의 눈을 밝히고 있다.

매일 혼자 근무하기 때문에 쓸쓸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무전기로 교신하며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그곳에서의 생활을 즐겼다.

#삼승산과 울미산의 경계는 비조고개
내리막길을 내달리면서 만난 곳이 비조치이다. 한자로는 날개 비(飛)새 조(鳥)치(峙). 오천1리에서 비조고개를 가기 직전 작은 동산이 있는데 새의 날개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큰 느티나무가 있고 성황당의 흔적도 남아 있다.

오천1리 이성철(46) 이장에 의하면 “새의 날개가 무거우면 날지 못한다고 해서 이 산에 쓰는 묘지에는 비석을 하지 않는다. 옛날 동네 사람이 비석을 설치했다고 모두 철거했다. 이런 동네 풍습은 대대로 내려오고 있는데 아마도 후대까지 이어갈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비조고개는 마로면 오천1리와 탄부면 대양 수피마을과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과거 아랫녘에서 한양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조선 시대 뿐만 아니라 근대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다.

세중, 원정 등 군내 남쪽 마을 주민들도 이 길을 통해 보은장을 이용했다. 또 이 고개를 걸어 넘어 탄부 대양, 벽지를 거쳐 보덕중학교를 가기도 했다. 자신도 이 고개를 걸어 넘어서 보덕중학교를 다녔다는 이성천 이장은 “아마도 70년대 말까지도 이 고개를 이용했을 정도로 주민들에게 비조고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큰 길이다”고 말했다. 지금은 군인들이 가끔 이 고개를 행군하는데 아마도 군사용 도로인 것 같기도 했다.

이같이 주요 길목인 비조고개는 역사의 아픔을 안고 있다. 쇠가 많이 나와 금동리라 불렸던 오천1리는 일제 때 쇠(金)를 캐는 광산이 있었고 마을에 일본 주재 사무소까지 설치해 운영했으며 채굴한 금은 케이블카로 마을까지 운반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질이 우수한 우리의 자원이 일본으로 반출되는 역사의 그늘이 비조고개에 숨어있다.

6·25전쟁 때에는 선량한 우리 주민들이 인민군에 의해 집단 총살당한 현장으로 지금도 뼛조각이 발견되는 등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아픈 역사의 현장을 안고 있는 비조고개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산에 숨어 있는 역사의 현장도 느낄 수 있는 산행 후, 마로면 기대리로 하산하면 마을에 있는 식당에서 민물매운탕과 찜, 그리고 돼지갈비 등도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