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농아부부의 ‘사랑나눔’ 이야기
마로면 소여리 최상각·박희옥씨 부부
2008-10-17 류영우 기자
버스를 탈 때도, 장터에 나갈 때도, 마을회관에서 이웃과 정담을 나눌 때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연에 귀를 기울입니다. 말은 우리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친밀감과 동질감을 자아냅니다. 마로면 소여리 최상각(53)·박희옥(52)씨 부부는 농아인입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 이웃과 친밀감을 나타내고 동질감을 갖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들은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와는 다르게 말 할 뿐이었습다.
#나누면서 사는 삶
가을걷이가 한창이었습니다. 15일, 오후. 최상각·박희옥씨 부부는 이날도 콤바인을 끌고 들녘으로 향했습니다. 13일부터 벼베기 작업을 시작했지만 3일이 지난 이제야 자신의 논에서 콤바인을 몰게 됐다고 합니다.
이웃과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최상각, 박희옥씨 부부가 그리는 세상은 ‘나눔이 있는 행복한 세상’이었습니다.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아인들을 위해 그들은 기꺼이 이틀을 나눠주었습니다.
콤바인이 없어, 일손이 부족해 추수할 시기가 되어도 벼를 벨 엄두도 못 내고 있던 회원들을 위해 두 팔을 걷고 달려갔던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 살기 참 힘들어요. 같은 농아인으로써 그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같은 입장에서 서로 돕고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틀 동안의 힘든 가을걷이 작업때문일까?
부인 박희옥씨는 오전 한 때,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고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황금빛 가을 들녘에서 만난 박씨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 밝았습니다.
“일하다 보면 힘들 때도 많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어요. 세상엔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농아인 회원들의 집을 고쳐줄 때도, 사과나무 밭에서 사과를 딸 때도 최상각, 박희옥씨 부부는 항상 함께 했습니다.
#세상을 향한 작은 바람
몸소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부부지만 세상에 대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화로 해결해도 될 일이지만 최씨 부부는 콤바인이 고장이 날 경우 농기계수리센터에 직접 가서 고쳐야 했습니다.
“우리 농아인들은 생활속에서 일반인들이 느끼지 못하는 많은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일반인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거죠. 의사소통도 불편하지만 농아인들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아요. 우리 농아인들도 사회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겠죠.”
일반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삶은 바로 최씨 부부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다시 들녘으로 향하던 부부가 살며시 돌아보며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넵니다.
“두 아들, 장가가서 잘 살았으면 좋겠고, 집도 새 단장해서 다복하게 살고 싶어요.”
반듯하게 잘 자란 두 아들의 성공과 가정의 화목을 바라는 따뜻함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