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한면 질신1구(148)-역사와 전통이 깃든 살기 좋은 마을
8개 고개가 마을을 호위 한 28개 성씨가 살수 있는 명당
가을이 익어간다.
마주치는 것들이 모두 익숙한 것이었지만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녘이 새삼 새로워 보인다.
가을 풍경속에 수한면 질신리는 참으로 평화롭게 보였다. 보기 좋은 산세를 둘레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의 모습이 참으로 살갑게 다가왔다.
깨끗하게 정리된 마을 골목길도 그랬고, 한가롭게 녹두를 따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도 그랬다.
슬그머니 눈을 돌려 하늘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조각하늘이 눈이 부시도록 푸르다.
파란 하늘과 맞닿은 능선과 여름내 푸르렀던 나무들이 서서히 바랜 빛을 내 뿜고 있는 가을의 정취를 뒤로 한 채 질신1리 주민들의 삶 속으로 빨려 들었다.
#난리를 피할 수 있는 명당
처음 마을이 생겨난 것은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최씨와 황씨, 그리고 배씨 등 3 성씨가 마을에 들어와 소나무 세그루를 심고 정자를 세운 후 삼송정이라고 부르던 것이 바로 마을의 시초다.
그 후 질신리 마을은 자손이 번성하고 외침이 없다고 해서 우복동, 보은과 옥천의 경계에 있다고 해서 월경동, 또는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서 제일고지라고도 불리어 왔다.
하지만 지금의 질신리로 불리게 된 데에는 3대 재앙과 8개의 난리를 피할 수 있는 명당자리라는데에서 유래가 됐다.
동쪽으로 마로면 적암 시루봉과 증봉, 남쪽으로는 마로면 세중 백록동 굴봉산, 북쪽으로는 내북면 이원리 백운동 뒷산, 그리고 이곳 수한 질신 윗산인 피난봉 등 4개의 시루봉으로 둘러쌓여 있는 보은은 옛부터 3대 재앙과 8개의 난리를 피할 수 있는 명당 중 한 곳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곳 질신마을은 보은지역을 둘러쌓고 있는 큰 시루봉 중 하나인 서증산 아래에 위치해 있고, 여덟개의 고개가 마을을 호위하고 있어 28성씨가 살 수 있는 명당 중 한 곳이다.
실제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처음 마을에 정착했던 최씨와 황씨, 배씨는 모두 마을을 떠났고, 각 지역에서 많은 성씨가 마을로 들어와 이제는 각성받이 마을이 됐다.
임호재(78) 질신마을 노인회장은 “질신리라는 마을의 이름도 먼저 들어온 사람은 나가고, 나간 자리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온다는 의미로 질신(질신)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라며 “한국전쟁이 발생했을 때는 옛 말대로 27개의 성씨가 이 마을에 살기도 했다”고 전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
나간 자리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온다는 질신리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마을의 이름대로 고향을 다시 찾는 사람은 없다.
“참, 장관이었지. 그때는 걸어서 학교를 다녔던 때였어. 마을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만 해도 30명을 넘었고, 매일 아침 등교길에는 수십명의 학생들이 줄을 지어 성리쪽과 발산쪽으로 걸어갔었어.”
최진곤(78) 어르신의 기억속에 남겨진 30년 전 질신리의 모습이다.
한 집에 3, 4명씩 아이들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던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단 한 명의 아이들 목소리도 듣지 못하게 된 것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질신리에는 80가구에 초등학생만 해도 50여명에 달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18세대에 40명의 주민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초, 중, 고등학생은 이제 마을에서 찾아 볼 수 없게 됐고, 그나마 지난해에 10년만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고랭지 채소도 옛 말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면서 질신리를 대표했던 고랭지 채소도 이제는 더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매년 이만때면 마을 전체를 뒤 덮었던 푸른 채소들을 이제는 마을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이다.
올해 55살의 채수호 이장이 마을에서 유일한 젊은 일꾼인 상황이다.
“옛 부터 이곳 질신리는 고랭지 지역으로 무와 배추 농사를 많이 지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을에 노인분들만 남아 더이상 채소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일할 사람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더 이상 마을에 남아 있지 않게 됐지요.”
최현기씨와 박재용씨 등 30대 젊은 청년들이 마을에 남아 있지만 현재는 모두 건설업 일을 하고 있어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유일한 젊은 일꾼은 채수호 이장이 유일하다.
결국 마을을 대표했던 고랭지 채소는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은 율무와 콩, 고추 등 노인들이 소일거리로 농사를 짓는 밭작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나마 채수호 이장이 1천200평의 하우스에서 포도농사를 지으며 부농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을 빛낸 사람들
지금은 고향을 떠났지만 각 지역에서 고향을 빛내고 있는 인물들이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울산광역시 북구청장에 당선됐던 이상범 전 청장도 수한면 질신1리 마을 출신이고, 윤성수(74)씨의 셋째 아들로 15년 전 행정고시 합격 후 현재 관세청 과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홍식(49)씨도 질신1리를 빛낸 인물이다.
이밖에 충청북도 사무관으로 진급한 조춘래씨와 산업은행 소속으로 금융평가 업무를 맡고 있는 최강수씨도 질신1리 출신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을을 빛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채수호 이장이다.
기계손질은 물론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주민들은 마을의 유일한 젊은 일꾼인 채수호 이장을 찾는다.
“25년 동안 이장일을 보며 동네에서 굳은 일은 혼자 다 했지. 노인네들 모시느라고 자기일은 제쳐두고 마을일을 제 일처럼 해주니 얼마나 고마워. 이제는 무슨 일만 있으면 다 이장만 찾게 돼.”
마을주민들의 칭찬 속에, 작지만 살기 좋은 질신1구의 희망찬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