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합된 주민 힘으로 마을경관 지켜내

■ 마을만들기, 성공전략 ⑦ 마을만들기 유래지 일본에서 배운다 - 일본 오이타현 유후인

2008-09-19     송진선 기자

【글싣는 순서】
1. 마을만들기, 주민 주도형이어야 성공
2. 동네가 숨을 쉬고 있다 - 전북 진안군
3. 마을 개발 주민이 주도- 경기도 양평 신론리
4. 마을 개발 주민이 주도 - 제주 저지마을
5. 마을 개발 주민이 주도 - 제주 예래마을
6. 지역인재가 마을 개발 주도 - 경북 군위 한밤마을
▶7. 마을만들기 유래지 일본에서 배운다 - 일본 유후인
8. 살고싶은 마을만들기 위한 토론회

정부가 농촌 재생을 위해 각종 농촌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어떤 사업이겠구나 하는 것을 알 정도로 용어들도 익숙해졌는데 산촌마을 만들기, 녹색농촌 테마공원 조성 사업, 살기좋은 지역 만들기, 농촌 종합개발사업, 농촌테마공원조성 사업 등이 그것이다. 사업내용 및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 부처만 다를 뿐 사업 내용은 거기에서 거기다. 이렇게 이름만 다른 체험, 관광마을 조성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마을만 해도 전국적으로 650개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지역 만해도 이름만 다른 체험, 관광마을 조성 사업대상 마을이 7군데이다. 이중 1개의 권역으로 묶은 장안 서원권역을 개별마을로 풀어보면 전체 12개 마을이나 된다. 그렇다면 이들 마을의 특성은 무엇이고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번 호부터 우리지역의 마을만들기 실제와 함께 내 지역을 내가 가꾼다며 주민 주도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선진 마을을 탐방해 우리지역의 마을만들기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전국적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거나 이미 사업이 완료된 지역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셀 수 없이 많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고 난 후 자연스럽게 그 마을에 독특한 무엇이 있어서 그것을 느끼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어야 하는데 사실상 인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인위적이라 하더라도 찾았을 때 감흥을 주는 그 무엇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마을이 되고 만다.

그동안 본보에서는 주민 주도형 마을만들기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마을을 찾아 소개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8월초 방문한 바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일본 오이타현 유후인의 마을만들기 사업을 소개한다.

유후인(由布院)은 인구 1만2천여명인 온천 휴양지로 구마모토현 아소에서 벳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동안 벳푸온천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유후인이 벳푸온천에 버금가 연간 4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온천마을로 이름을 얻은 이유는 다름 아닌 철저한 차별화 전략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일본 전통 여관인 료칸을 그대로 보존해 영업하고 있으며, 관광상품 판매점과 음식업, 그리고 논농사 등을 짓고 있는 작은 온천마을 유후인의 마을만들기 사업 성공담을 공개한다.

◆자연을 지킨 것이 마을 만들기의 핵심

유후인 마을만들기의 핵심은 지역을 가꿔나가는 주민공동체에 있다.

그 시작이 1952년 한적한 시골이었던 이곳에 정부가 수립한 유후인 분지 댐 계획을 무산시키면서부터다.

표고 550m 이하는 수몰, 관광서나 유후인 역 등의 마을 중심부는 수심 100m의 호수로 가라앉을 판이었다.

일본 정부는 댐건설 인해 생긴 호수 인근에 리조트 관광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고, 지역에선 조상들이 물려준 산천을 수몰시킬 수 없다며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결국 댐 조성계획은 무산되고 마을을 지킬 수 있었다.

댐 건설 무산 이후에도 몇 차례 위기가 있었다.

1970년에는 골프장 건설 계획이 발표됐고, 1975년에는 큐슈 지방의 대지진으로 유후인이 완전히 망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1973년에는 동물공원 건설계획이 거론되었고 주민들은 교통이나 자연경관의 손실, 그리고 수질오염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운동을 전개해 다른 지역에 건설되게 했으며, 1980년대에는 일본 거품경제의 영향을 틈탄 대규모 리조트 건설 계획이 발표됐다.

주민들은 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 주민의 자발적인 조직인 ‘유후인의 자연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을 펼쳐 이 또한 무산시켰다.

1985년에는 마을내 한 여관에서 옥상에 자유의 여신상을 건립하려고 하자 유후인의 경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대운동을 전개해 결국 건립을 무산시켰다.

그런가하면 1994년 마을내 습지를 개발하려 했을 때 주민들은 이곳이 귀중한 다습초원식물의 보고를 훼손시킬 수 없다며 4억원을 들여 6.5㏊를 구입했다.

고속도로 교각의 배색이 붉은 색이 표준이었지만 유후인은 붉은 색이 너무 눈에 띈다는 주민들의 건의로 일본 도로공단이 녹색으로 교체하기도 하는 등 마을을 지키려는 주민의식이 크게 성숙됐다.

◆주민결속력으로 마을 지켜

위기 돌파는 항상 유후인 주민들로부터 나왔다. '유후인의 자연을 지키는 회'가 결성돼 골프장 건설계획을 백지화시켰고, 이를 계기로 만들어진 '유후인의 장래를 생각하는 회'는 들판의 황폐화 때문에 개발계획이 잇따라 발표된다고 생각하고 들판을 살리기 위해 '소 한마리 목장 주인되기 운동'을 펼쳤다.

도시민들로부터 받은 돈으로 송아지를 키운 뒤 새끼를 낳아 벌어들인 이익을 매년 도시민들에게 배당으로 돌려주고 농가도 소를 확보하는 도농상생형 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도시민들이 매년 한 차례씩 유후인의 드넓은 초원에 모여 쇠고기 바비큐를 실컷 먹은 뒤 장가를 가지 못한 노총각은 결혼하게 해달라고 하거나 연인들을 서로 사랑한다고 하는 등 하고 싶은 말을 목청껏 외치는 절규대회 행사를 개최했다. 인기 만점이었다.

이 행사는 1975년 대지진으로 마을과 14㎞ 떨어진 레이크 사이드 호텔의 피해의 전국 방송으로 인해 겪은 피해를 본 유후인이 위기를 극복하는 사례가 됐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한 것이 이뿐만이 아니고 영화제, 음악제 등의 문화이벤트도 개최해 성공을 거뒀다.

1976년 영화관 하나 없는 마을, 그러나 '그곳에 영화가 있다' 라는 표어로 시작한 영화제에 이어 '밤하늘 아래 작은 콘서트'라는 제목으로 열린 음악제, 미술관 유치 운동 등으로 극복했다.

유후인의 이같은 이벤트는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 언론을 통한 지역 알기기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음악제와 영화제는 올해로 32년째다.

◆깐깐한 자치 조례

1980년대 개발 붐은 마을의 가장 큰 위기였다.  

1988년 리조트법의 시행됨에 따라 유후인 같은 관광지에 대규모 리조트 조성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자 전국에서 투기꾼이 몰려들었다. 당시 외부에서 몰려온 대형 자본은 무계획적인 개발이 주를 이뤘고 잘보존된 유후인의 자연환경 파괴, 마을 경관을 헤치려고 했다.

농지 10a(300평)당 1억엔이 넘는 고액에 매매되자 주민들도 유혹을 당한게 사실이지만 유후인 주민들은 일정 이상의 면적이나 높이 등의 개발행위에 대해 사전협의를 요구, 마을만들기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의 '윤택한 마을만들기'조례를 제정했다.

이는 건물을 지을 때 높이를 제한하고 높이에 대한 제한 등을 조례를 만들어 유후인의 시골스런 자연경관을 보존하고자 하는 것으로 심의회에서는 유후인 마을만들기의 방향을 존중하도록 하고 있다.

유휴인 자치 조례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허가를 하지 않고 있지만 상위법률과 충돌할 경우 규모를 축소시킨다거나 조금이라도 자연과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개발이 이뤄지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 결과 전국적인 개발붐에도 불구하고 유후인에는 5층을 넘는 건물이 들어서지 못했고, 1584m 유후다케(由布岳)의 스카이라인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등 마을의 경관이 지금도 훼손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귀농 유도위한 연수제도 실시

유후인은 이같은 마을가꾸기의 지속을 위한 교육 사업도 전개하고 있 다.

유후인은 유무형의 관광자원을 유지하기 위해 관광협회가 주관해 숙박업소를 대상으로 관광객 접객교육을 실시하고 요리협회와 교류도 갖고 특히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유입하기 위해 20년 동안 농촌연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첫 연수 프로그램 대상자들이 현재 유후인 지역을 이끌고 있는 50대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가서 배워도 또다시 지역으로 돌아와 살기좋은 마을을 가꾸는 교육 시스템은 유후인 마을만들기를 지속 가능케 했다.

이같은 교육사업으로 1950년대 유후인보다 잘살던 마을들은 상당수 개발과정에서 도태된 것과 달리 고유의 정신과 자연을 지켜낸 유후인은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1만2천여명의 작은 도시 유후인의 관광객은 1965년 7만명에서 현재 420만명으로 증가했고, 연중 1천800억원의 관광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막대한 자금을 시설투자에 쏟아 붓고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지역과 크게 비교된다.

큐슈지방의 가장 가난한 마을. 눈에 띄는 시설 하나 없이도 오직 주민의 힘으로 지역을 가꿔온 결과이기 때문에 더욱 놀랍다.

있는 자연을 지킨다는 보존정신, 마을의 경관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키고 농촌경관을 보존한다는 원칙으로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놓은 유후인의 전통적인 경관은 우리지역 마을만들기 사업에 견줘볼 때 좋은 학습장이 될 것으로 보였다.
 
◆관광명소로 자리매김

유휴인 주민들이 신처럼 수호하고 있는 해발 1584m의 유후다케(由布岳)로 뻗어있는 작은 길을 따라가면 우리나라 인사동을 연상시키는 전통공예품 상가와 장인들의 작업실을 볼 수 있는 민예촌(民藝村)이 인상 깊다.

대부분 새로 신축한 건물 없이 옛날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민가를 개조해서 만든 음식점, 토산물 판매점 등이다.

또 유후인 미술관, 샤갈미술관 등 30여개에 달하는 미술관과 잉어 비늘이 금빛으로 보인다는 긴린호(金鱗湖) 주변에 일본 전통식 여관과 온천탕 등이 자리하고 있다.

농촌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작은 산골 온천지가 사람들로 북적대는 세계적 관광지가 되면서 유후인으로 들어가는 열차노선도 신설되고 JR특급도 유후인에 정차하고 유후인 마을 내에는 별다른 대중교통수단이 없이 탈거리는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렌탈 자전거, 클래식 카, 관광마차, 관광택시가 전부다.

주요 도로 외에는 모두 승용차량 2대가 간신히 교행할 정도의 도로 폭이 좁지만 가게 주인들이나 관광객, 누구도 교통불편을 호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즐기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같은 상황이라면 당장 도로를 넓혀야 한다고 민원이 들끓을 것이다.

유후인에서 만난 가기야마(30)씨는 “사람들도 친절하고 온천도 좋다”고 말했고, 여름휴가차 2박3일 일정으로 유후인을 찾았다는 김용선(34, 김포)씨는 “처음 체험한 료칸에서 잠도 잘 잤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좋았다”고 말했으며, 여현직(27, 부산)·김기웅(27, 서울)씨는 “일본 전통온천을 체험하기 위해 방문했는데 느낌이 참 좋았다”고 말했다.

새로운 건축물을 조성하는 방법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선조들의 생활이 묻어있는 오래된 시설들을 활용해 창조한 작은 공방과 작은 박물관들, 지역 특산물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깨끗한 식당과 가정집인지, 온천인지 구분이 안가는 온천, 일본식 전통 여관인 료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진정한 지역개발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