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80부터, 건강하고 부지런한 삶
고추심기, 마는 손질하기 등 마을일 도맡아 하는 이지용 할아버지
우리들은 흔히 인생은 80부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아마도 이런 어르신 같은 분이 있기에 ‘인생은 80부터’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삼승면 선곡 선우실 마을에 83세의 이지용 할아버지는 평소에 술을 아주 좋아한다.
많은 논과 밭 등 전 재산을 술 바람, 여자 치마 바람에 다 팔아 없애고, 아내의 애간장을 다 썩게 하며 살아왔다.
전 재산을 다 팔아 없앨 대로 없애고 결국은 남의 집살이를 하며 7, 8년을 살아왔다.
그동안 아내는 솜씨가 좋아 바느질 품팔이를 하며 살았고, 뒤 늦게 부부의 정을 안 이지용 할아버지는 젊어서 아내에게 속썩인 일을 뉘우치며 아내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며 살았다.
잉꼬부부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행복하게 살았지만, 아내는 병에 들어 자리에 눕게 됐다.
할아버지는 지극 정성을 다 했지만 결국 아내는 남편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리고 아내가 묻힌 하늘을 바라보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살았다.
◆ 이웃을 위한 삶
이지용 할아버지는 다리가 많이 아파 유모차에 의지해야만 걸어다닐 수가 있다.
이렇게 다리가 많이 아프지만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남이 일 하는 것만 보면 무슨 일이든 끝까지 도와주는 성격이다.
고추를 심는다던지, 아주머니들이 봄에 냉이를 캐서 다듬고 있어도 함께 다듬어 주는 등 무슨일이든 남이 하는 일이면 눈에 띄는 대로 다 해주는 성격이다.
마을 주민 중 누군가가 마늘을 캐다가 마당에 널어놓으면 그 마늘을 손질 다 해서 엮어주고, 가을이면 알타리 무도 다듬어 주는 등 남자가 하는 일이든, 여자가 하는 일이든 눈에 보이는대로 다 도와준다.
오늘도 이지용 할아버지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이웃집 부추를 다듬어 주고 있다.
남의 부추를 다듬어 주면서 며칠 전 작은 아들과 며느리, 손자가 다녀간 이야기를 했다. 아들 형제는 홀로 된 아버지를 도시로 모시려고 했지만 이지용 할아버지는 끝내 고집을 피우고 혼자 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웃사람들이 “혼자 고생하지 말고 아들 따라 가지 왜 안가냐. 혼자 밥해먹기도 힘들지 않느냐” 라고 하지만 “아들은 내 아들이지만, 며느리한테 못할 일 시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다리가 좀 아파서 고생이지, 시골에 있는 것이 속 편하고, 맑은 공기속에서 내 마음대로 내가 먹고 싶은대로 해 먹고, 이렇게 사는 것이 최고지 도시에가서 답답하게는 하루도 못 살 것을 왜 아들을 따라 가느냐?”
아들 형제와 며느리들이 한 달에 두세번씩은 다녀가고, 반찬도 해서 냉장고에 넣어주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 주고 괴로울 것이 없이 내 자유대로 사는 지금의 삶이 정말 좋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이지용 할아버지.
올해 83살의 이지용 할아버지는 오늘도 유모차를 몰고 나와 동구밖 거리를 혼자사는 노인들과 함께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생각이 나면 택시를 불러 아내의 산소에 가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온다고.
“임자, 나 왔어. 잘 있는 거지? 애들도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는 마. 내가 임자 곁으로 갈 때까지 잘 있어.”
조순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