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즐기려는 도시인들이 둥지를 트는 곳
마을탐방(120)회인면 쌍암2리 능암마을
“아아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내일 보은신문사에서 우리 마을 취재를 나온다고 합니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마을 회관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이장이 말씀드렸습니다.” 회인 쌍암2리 능암(能岩)마을 취재를 위해 마을 회관으로 방문했을 때 마을 주민들이 방 한가득 모여 계신다. 마을 회의라도 했나 싶어 여쭸더니 회의도 했지만 보은신문사에서 마을 취재를 나온다고 주민들을 모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사실 취재를 다니다 보면 마을 이장님과 연락을 취해 취재하기도 어려운 마을이 많았고 마을 자랑할게 없다고 취재를 거부하기까지 하는 마을도 있었다. 그런데 마을 취재를 나온다고 주민들을 경로당에 모이게 했다니 뜻밖의 횡재다 싶었다. 그래서 기자는 취재의 마을에 대해 궁금한 실타래를 슬슬 풀어놓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기자의 한 가지 질문에 열 개, 열 다섯 개 답변을 쏟아놓았다. 아직 아날로그 취재방식이어서 취재수첩에 일일이 적는데 받아 적기가 힘들 정도였다.<취재전기>
회인 쌍암2리는 능암마을로 불린다. 1천500년대 입성한 정씨 집성촌으로 현재 23세대 43명(남자 23명, 여자 2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14세대가 정씨 가구이다.
천석꾼으로 많은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덕행을 베풀었고 생가의 서까래와 기둥 등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조선시대 호조참판 정선태의 얘기가 전해져 오고 있는 능암마을의 주민들은 강태만(63) 이장과 정상억(77) 노인회장, 고창순(72) 부녀회장, 정성영(57) 지도자와 함께 마을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 고령자 정진억(90) 할아버지는 귀가 좀 어둡긴 하지만 거동에 불편이 없고, 할머니 중에는 박문영(87)가 최 고령자이며 박제관(52)씨가 제일 젊다. 물이 좋고 공기가 좋아서인지 마을 주민들이 건강하게 부부가 해로하고 있는데 이종달(87)할아버지와 정옥순(81)할머니 부부는 연로한 지금도 3천평 농사거리를 리어커를 이용해 손수 지을 정도로 정정하다.
# 1백년 감나무, 밤나무는 보통
밖에서는 마을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회인골이 감나무 고장이니까 감은 많이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좁은 마을 진입로를 따라가 들어가니 마을 안이 온통 나무천지였다. 잎이 다 떨어졌으니 무슨 나무인지 분간은 할 수가 없었지만 농경지라고 생긴 곳은 모두 나무들이 들어 앉아있었다. 여름철이면 숲에 가려서 집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주민들에 따르면 호두나무, 밤나무, 감나무란다. 다른 동네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물론 사과나 배, 대추의 경우 과수원으로 조성해놓았지만 사과나 배, 대추가 아닌 다른 수종이 밭에 들어앉아 있기는 이 마을밖에 없을 것 같았다. 돈이 되는 나무가 농경지에 꽉 들어차 있는 것이다.
보통의 농가가 밭에는 콩, 고추, 옥수수 등을 식재해 자식들 주고 장에 내다 팔아 병원비도 하고 ‘손주’들 용돈도 주고 논에는 벼를 재배해 식량을 하고 자식들에게 한 짝씩 대주는 것이 보통의 시골인 것과 비교해 크게 다른 모습이다.
나이를 많이 먹은 나무는 100년은 보통이고 300년이 넘은 것도 있다. 정상수(72)씨 집 뒤에는 300년 묵은 밤나무가 있는데 그 세력이 얼마나 큰지 6·25때 밤나무 아래로 피난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정상혁 전 도의원 집 울안에 있는 뽕나무도 100년이 넘는다. 이렇게 고목은 100년은 넘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 그 고목들은 세력이 약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마을의 역사를 말해줄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는 큰 경제원이 되고 있다.
# 쌍암 과실 아니면 청주 장이 안됐지
이렇게 유실수가 많으니 생산되는 과실량도 엄청났다. 사과와 배를 제외하고 제사상에 오르는 과실은 모두 이 마을에서 생산되니 신품종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쌍암골에서 과실을 내지 않으면 청주(남주동 시장) 장이 서질 않는다, 제사를 못 지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시장 지배력도 있어 시장가격을 좌지우지했을 정도다. 신품종이 개발된 지금도 쌍암 과실 생산량이 많아 농가의 높은 소득원이 되고 있다.
특히 감은 곶감으로 생산해 판매하는데 연간 5천접 매출액이 1억원이 넘는다. 이 마을은 영동이나 상주처럼 기계로 깎지않고 일일이 사람이 깎아 곶감이 멍이 없고 흠이 없다.
또 기계가 바람을 일으켜 단기간에 건조하는 건조장을 이용하지 않고 덕 시설을 만들어 자연풍에 오랜 시간 동안 외부의 수분도 흡수하면서 햇살도 받으면서 건조시켜 당도가 높은 것은 물론 곶감 살이 두껍고 쫄깃쫄깃해 맛이 좋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평가다.
그래서 생산량이 영동이나 상주에 비해 적고 인지도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을 받은 회인곶감 재배법을 배우기 위해 영동과 상주시 농민들이 많이 방문해 회인곶감을 먹어 보고는 확실히 당도가 높고 살이 많다고 했다는 것.
그런데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커서 당도가 높은 것이니 우리지역만이 받는 큰 혜택이다. 그래서 이 마을 주민들은 지금 우리지역이 살길은 과실밖에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 숲이 좋아 외지인 이주 많아
조상들이 대대로 조성해놓은 숲은 마을 주민들에게는 소득원이 되고 있지만 외지인들에게는 참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
주민들은 마을 전경을 보면 산세가 아름답고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안고 있으면서도 마을 뒤가 막히지 않았으며 골이 길고 물이 풍부해 살기좋다고 풍수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도시생활을 접고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도시인들의 이주가 많은 곳이다. 정상혁 전 도의원이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인 이곳에 낙향해 생활하고 있다.
마을에 외지인으로 처음 둥지를 튼 사람이 손종천(60)씨이다. 소나무(금강송)에 매료된 그는 대전 축협 상무를 지내다 퇴직하고 이주준비를 하면서 인근지역을 다 둘러봤지만 능암마을 만한 곳을 발견하지 못해 18년전 처음 이 마을에 적을 뒀다.
그의 집 정원이나 일터인 농장(에덴농원)에는 18년생 소나무가 아름다운 수형을 자랑하고 있다. 능암마을을 비롯해 갈티리, 수한면 등 농장 규모만 1만여평에 달하는데 순전히 소나무만 식재했다.
손종천씨는 “18년간 살았으니 굴러온 돌이 아니라 나도 이젠 박힌 돌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2년 전부터 이장을 보는 강태만씨는 청원군 초청리에 있는 일화생수 총무과장을 지낸 인물로 고향이 청원군 북이면이지만 12년전 능암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마을에 대해 잘 몰랐던 강태만 이장은 시설 하우스 채소를 재배하기 위해 수 십년이 넘은 호두나무를 모두 베어 버렸다.
그러나 능암마을은 해발이 높고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크고 청주보다 온도가 낮아 난방비가 많이 소요돼 채소재배 적지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는데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호두나무 베어버린 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는데 그나마 감나무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 쌍암2리에는 교수도 있다. 충북대 중국어과 노경희(53)교수가 2004년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다.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다니다 공장이 없는 것은 물론 산세가 좋고 나무가 많고 물이 풍부하고 대형 축사가 없어 주거생활을 하기에 딱이다 싶어 이주한 것이다. 물론 쌍암2리로 주민등록을 이전했고 대학에 나가는 부인과 자녀까지 모두 이곳으로 이주해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충북은행 보은지점장을 지낸 김일중씨도 이곳에서 대추과수원 8천평을 경작하는 등 능암마을 주민으로 지내고 있다. 농한기인 요즘도 전지를 하는 등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서울시 탱화 문화재1호였던 화가도 거주하고 농협 진천지점장인 박이수씨도 땅을 마련하고 집도 마련, 퇴직 후 이곳에 거주할 계획이며 청주 성균관학원 원장인 김형군씨도 집 지을 준비를 하는 등 외지에서 들어오기 위해 터를 사달라는 문의가 많다.
# 녹색체험마을조성 희망
이같은 풍부한 인적자원이 있는 능암마을은 그야말로 녹색농촌 체험마을 등 관광마을 조성사업 적지이다.
고속도로 개통이전에도 청주와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지난해 고속도로 개통으로 도시와의 접근성이 더욱 좋아진 여건에 관광요소가 될 용 둠벙 계곡, 구룡산 삼림욕장, 인근의 장수굴, 빙어낚시객이 많은 쌍암저수지, 다양한 수종의 유실수, 각종 홑잎 나물, 버섯 등 각종 산채가 많아 관광객이 쉴 수 있는 민박집이나 팬션만 갖추면 된다.
그래서 주민들은 군내 다른 어느 마을보다 조건이 좋은 능암마을이 녹색농촌 체험마을로 조성돼 주민 소득도 높이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도시민들의 휴식을 취해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마을 내 대부분의 토지가 정씨 일가의 소유여서 마을 공동 시설을 설치하기 어려운 것이 이 마을이 풀어야 할 숙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