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119)-회인면 쌍암1리 지바위 마을
19가구 주민이 가족같이 지내는 화목한 마을
눈이 내렸다. 겨울이지만 올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아쉬웠는데 싸라기에다 비랑 같이 내려 겨울 풍경을 만끽할 함박눈은 아니지만 그래도 차량이 다니지 않는 곳은 눈이 쌓였다.
어떻게 회인을 갈까. 보은에서 가려면 수리티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눈길 운전이 부담스러워 청원∼보은∼상주간 고속도로를 탔다. 불과 10분도 안돼 회인IC에 닿았다. 아마 국도를 이용했다면 수리티를 넘어야 하니까 빨라야 15분. 눈까지 왔으니 20분은 걸렸을 거리였는데 고속도로가 참 좋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회인면 쌍암리는 1, 2, 3리로 분리됐다. 쌍암1리는 자연마을 명으로 지바위라 일컫는다. 한자어로는 계수나무 계(桂)자와 바위 암(岩)자를 써서 계암리(桂岩里)다. 이것이 ‘게바위’로 쓰게 되고 게바위, 게바위 하다 ‘지바위’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마을입구에 설치한 마을 이정표에는 쌍암1리 지바위라고 적어놓았다.
그렇다면 마을에 계수나무가 있고 바위가 있어서 계암일까? 그것이 아니고 마을 뒷산의 모양이 벼슬을 바짝 세운 수탉을 닮았다고 해서 계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멀리서 마을을 보니 뒷산 봉우리 모양이 뾰족하긴 하지만 닭이 벼슬을 세운 것인가 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김대중(46)이장과 정광영(77) 노인회장, 이성시(53) 부녀회장, 장용봉(50) 지도자를 비롯해 총 18가구 39명밖에 안되는 쌍암1리.
김대중 이장은 이 마을 최고 젊은이다. 총각 때인 29살 때 처음 이장을 봐서 4년간 재임하다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가 3년전부터 다시 이장을 보고 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김대중 이장이 열심히 마을의 일을 본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이 뿐이 아니다.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정광영 노인회장도 열심히 마을일을 돌봐 마을 주민들이 오순도순 이웃간의 정을 나누며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다며 칭찬한다.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모두가 가족같은 마음으로 주민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읽혀지는 주민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외지인 묘지 쓰는 것 제한
마을로 통하는 진입로는 딱 한곳이다.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가다 주택들이 들어선 곳에서 두 갈래로 나눠져 있다. 그러니 동네 보기 싫은 사람이 있고 꼭 외면을 하고 싶은 곳이 있어도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일까 마을 사람들은 타지 사람들이 이 마을에 묘를 쓰거나 납골묘를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오죽하면 아예 마을 진입로 변에 외지인은 묘지 및 납골당을 쓰지 못한다는 경고성 문구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그렇다고 정말 묘를 쓰지 못할까. 일단 동네에 묘를 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경고 문구에 지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다.
실제로 외지인이 가족묘지를 할 수 있는 땅을 구입해 이곳에 묘를 쓰려고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반대해 결국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외지인은 마을 주민들을 고소했고 주민 모두가 대전 고등법원까지 가서 판사 앞에 서는 등 곤란을 겪었지만 결국 외지인이 포기해버렸다. 주민들이 이렇게 외지인들의 묘지 사용을 터부시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진입로가 하나여서 주변 길을 따라 산에 진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동네 한 가운데를 통해야만 마을 뒷산을 갈 수가 있기 때문에 동네 사람도 아니고 외지인의 시신이 동네로 들어오는 것을 ‘재수가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마을 주민들이 토속신앙을 신봉하는 것도 외지인들이 묘지 쓰는 것을 막는 이유가 된다.
주민들은 매년 음력 10월14일이면 마을 뒷산 쌍바위에 있는 산제당에서 산제를 지낸다. 또 정초인 음력 1월14일이면 마을입구에 있는 성황당 격인 탑에서 탑제를 지낸다. 그해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을 제주로 선발해 탑제와 산제에서 주민들의 생기복덕과 함께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같이 주민들이 충심으로 토속신앙을 믿은 덕분인지 지금까지 마을에 큰 화가 없었다고 한다.
정광영 노인회장은 “6·25 전쟁 때 우리집에서는 사촌까지 4명이 참전하는 등 동네 주민들이 많이 전쟁터에 나갔는데 사망자 없이 모두 무사 귀가했다”며 “이 모두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전통을 계승하고 또 부모님들이 물려주신 토속신앙을 하늘같이 섬겼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의 믿음에 대한 성실도가 어느 정도인가 가늠이 가능하게 했다.
#호도도 빼놓을 수 없는 작물
취재를 하면서 감고을인 회인에 호도나무가 많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 들어보니 1년 수입이라고 해봐야 큰 규모는 아니지만 집집마다 호두나무가 20∼30주는 된다고 한다. 밭둑에 한두 그루 있는 것이 보통인데 2, 30주라니 정말 많기는 많은 것 같다.
옛날에 식재해 놓은 것들이어서 오래된 것은 200년이 넘는 것도 있다. 어른이 잡아도 몇 아름이 될 정도다. 그래도 수확양은 그리 많지 않아 200㎏정도 수확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호도는 사람들이 수확하는 양보다 날다람쥐나, 청설모에게 뺏기는 양이 더 많을 정도로 이들에겐 밥이다.
사람들이 이들을 이길 양으로 나무를 타고 기어오르지 못하게 나무 밑동부터 함석을 두르지만 약아빠진 청설모는 뛰어올라 호도를 갉아먹고 있다. 사람들이 당할 재간이 없다. 이렇게 청설모에게 상당량을 뺏기고 남은 것이니, 그 정도 양을청설모의 밥으로 뺏기지 않고 다 수확을 한다면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수확한 쌍암 호도는 호도마을로 알려진 영동군 상촌에 모두 팔린다. 쌍암 호도가 상촌 호도로 둔갑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수확량이 많지 않으니 자체 브랜드를 갖지 못하고 이렇게 다른 지역 명으로 팔리고 있지만 품질은 쌍암 호도가 상촌 호도를 크게 상회할 정도로 살이 많고 고소하다고 한다.
호도는 겨울이 춥지 않고 또 호두나무 잎사귀가 나올 때인 봄에 서리가 내리지 않는 등 꽃샘추위가 없으면 풍년이라고 한다.
올 겨울은 예년보다 춥지 않았으니 봄 날씨만 말썽을 부리지 않으면 호도는 풍년이 들 것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감 저온저장고 건립
감나무도 많았다. 집집마다 감나무가 없는 집이 없다. 감나무가 있는 풍경은 농촌이라면 어느 마을이나 같은 모습이지만 특히 회인은 감이 많았다. 지금도 감 덕장에는 매달아 놓은 감 타래가 그대로 늘어져 있는 집도 있었다.
감은 서리 오기 전, 절기로는 상강(霜降)을 중심으로 1주일 안에 모두 따야 하므로 가을철에는 어느 지역보다 바쁘다.
대부분 3, 4m가 넘으니 사다리를 놓고 딸 수도 없고 일일이 나무 위로 사람이 올라가 따야 하는데 그 작업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농촌의 인력이 어느 마을을 막론하고 연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랫부분에 달려있는 것만 수확하고 나머지는 수확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까치 밥으로 제공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영동이나 상주 사람들에게 감나무 당 10만원씩 나무 째 파는데 경우가 많다.
곶감을 만들어서 팔면 나무당 3, 40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가을에는 감 따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서리 오기 전에 모두 따야 하고 적기에 감을 다 따도 2, 3일 지나면 쉽게 무르기 때문에 밤 새 깎아 잘 마르도록 밖에 매달아야 한다. 우리가 쉽게 먹는 곶감도 손이 보통 많이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솔 찮게 들어오는 곶감 돈으로 주민들의 주머니는 그래도 두둑해질 수 있는 것이다.
정광영 노인회장은 “자식들을 통하거나 친척의 소개로 아파트 단지에 파는데 곶감 이름은 영동이나 상주가 더 알려졌지만 품질은 회인 게 훨씬 좋아 회인 곶감을 먹어 본 도시 소비자들은 다시 찾을 정도로 고정 고객이 되지! 그래서 우리는 판로걱정은 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정 노인회장은 그러면서 회인 감이 얼마나 맛있는지 맛이나 좀 보라며 그동안 자식들에게 주기 위해 보관하고 있던 홍시를 한 바가지 내오신다. 잘 무른 홍시를 골라 한 입 베어 물으니 그 맛이 달콤하다. 홍시를 좋아하는 식욕 발동으로 월하 홍시 2개, 둥시 홍시 1개, 총 3개나 먹었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어르신들이 참 많이도 먹는다고 속으로 생각할 정도로 먹었다. 점심을 먹지 못할 정도로 배가 불렀으니 말이다.
마을에서는 올해 댐 지원사업비로 곶감 저온저장고를 건립할 계획이다. 저온저장고가 생기면 낮에는 감을 따고 밤에는 곶감을 깎아야 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작업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일단 감을 모두 따서 저온저장고에 보관하면 쉽게 무르지 않기 때문에 곶감을 깎는데도 조금은 여유가 생긴다. 어르신들의 고생이 조금은 덜할 것으로 보여 안심이 됐다.
감과 함께 집집마다 한우 1, 2마리는 다 먹이고 김대중 이장은 30마리를 먹일 정도로 한우는 동네 큰 소득원이다.
한우사육농가들은 요즘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미국의 곡물가격 인상으로 인해 사료 값이 계속 올라 생산비가 많이 들어가는 대신 한미 FTA로 인해 소 값이 크게 떨어져 소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사료 값이 오르기 전, 또 소 값이 좋을 때는 송아지 낳으면 그것 키워 내다 팔아 생활비 만들어 쓰는 일이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그 재미도 없다. 어서 사료 값이 오르지 않고 안정되고 소 값도 안정됐으면 한다고.
젊은이들은 다 떠난 빈 둥지 농촌을 조상들이 물려준 곳이라고 떠나지 못하고, 조상들이 물려준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고향을 지키며 사는 이들의 소박하지만 큰 바람이 새해에는 꼭 이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