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조리 원산지는 보은

장은수 시인(탄부 장암 출신) 

2008-01-04     보은신문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음력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 설날이 시작되면 어둠속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복조리 파는 장수들의 “복조리 사려∼ 복조리사려∼”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설날에 마련한 조리여서 각별히 '복(福)'자가 붙어 복조리라 한다.

조리는 도정이 잘 안된 곡식에서 돌과 나쁜 이물질을 거르고 이는 도구로서 돌을 거를 때 소복소복 올라오는 곡식 모양처럼 복이 들어온다는 소박한 소망이 담긴 뜻으로 풀이된다. 복조리는 있던 것을 쓰지 않고 복조리 장수에게 산 것을 걸었는데 일찍 살수록 길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섣달그믐 자정이 지나면 복조리 장수들이 “복조리 사려”를 외치며 인가 골목을 돌아다니고, 주부들은 다투어 복조리를 사는 진풍경은 벌써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일 년 동안 사용할 수량만큼 조리를 사서 실이나 성냥 엿 등을 담아 문 위나 벽 등에 걸어두는데, 이는 장수와 재복을 바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이기 때문에 한 해의 복이 쌀알처럼 일어나라는 의미와 함께 농경민족의 주된 곡식인 쌀을 다루는 도구로서 더욱 중시된 것으로 여겨진다.

조상들은 새해 첫 새벽 대들보나 부엌문 앞에 복조리를 거는 풍속은 쌀을 일 듯 복을 인다는 상징성과, 조리의 무수한 눈이 나쁜 기운을 감시한다고 한다. 돌을 골라내 오복(五福)의 하나인 치아를 보호한다는 실용적 의미 등이 녹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복조리는 값도 안 깎았고, 아무 집 마당에나 던져두고 나중에 조리 값을 받으러 가도 싫은 소리를 듣는 예가 드물었다.

요즘은 쌀이 천대받으면서, 또 쌀 속에서 돌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자, 조리의 사용이 사라지게 되고 이에 따라 복조리 풍속도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옛날 조상들은 복조리를 사서 방이나 대청 한쪽 벽에 걸어 놓고 하나씩 계속 사용하면 한 해 동안 내내 복이 들어오게 된다는 민간신앙이 싹을 티운다.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의 산촌이나 농촌에서는 설날에 복조리와 더불어 갈퀴를 사놓는 풍습이 있었다. 쌀을 이는 조리와 어떤 물건들을 긁어모으는 갈퀴가 다 같이 생활에 필요한 기구이면서, 서로 한 해 동안의 복을 일거나 긁어 들여 취하는 일을 담당한다는 민간신앙으로 정착되게 된 것이라 한다.

복조리의 원산지가 충북 보은이었다는 것을 신문 보도를 보고 알았다. 충남의 서산, 강원도의 원주, 전남의 담양 등 그밖에 다른 곳들에서도 만들어 졌는데, 이곳 사람들은 겨우내 부업으로 만든 복조리를 온 식구가 등에 걸머지고 전국 각지로 흩어져 돌아다니면서 팔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설날에 복을 비는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세시풍속들이 많았다. 갑옷을 입은 장군이나 역귀와 마귀를 쫓는 신의 형상, 삼재를 세 마리의 매를 그림으로 그려 붙이기도 했다. 이것들은 재액을 물리쳐 한해 복되게 살려는 인간의 간절한 기복행위의 한 행태였던 것이다. 이러한 설날의 전통적 기복 세시풍속이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그 기복행위들 가운데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은 복조리였다. 최근 서울 지하철에서 국적불명의 변용된 복조리와 버선등 상품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새해 첫 출발을 알리는 복조리장수 외침소리는 다시 듣지 못하게 되는 걸까. 그마저도 옛날이야기가 되는 모양이다. 허지만 복조리라도 집안에 걸어 난마(亂麻)와 같은 세태를 벗어나는 새해가 되어 달라고 빌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