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읍 용암리
다양한 작물 재배로 고소득 올려
2007-07-13 송진선
포장이 완료되지 않았으나 지금도 주민들이 중요하게 이용했던 그 도로는 군도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 1987년 1월1일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보은읍으로 편입됐다.
산길도 아니어서 다니기도 편한데 거리도 멀 뿐만 아니라 창리가 면소재지로 되면서 이원리에 있던 면사무소, 우체국 등이 창리로 이전해 행정적인 볼일을 보는데 주민들이 겪는 불편이 너무 커 이웃하고 있는 보은읍으로 편입이 된 것이다.
보은읍에 편입돼 군청 소재지 주민이 됐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좋아했을 주민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후 20년 용암리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지만 마을은 외형부터 부자마을로 보인다. 집집마다 돈이 차곡차곡 쌓일 것 같다.
시설하우스, 버섯농장, 축사, 잠실 등등 벼농사로는 큰 소득이 없는 것을 안 주민들은 벼농사에 연연하지 않고 논에 타 작물을 식재해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63가구 150여명이 살고 있는 용암리는 이장 이대현(54), 전정섭(74) 노인회장, 하찬호(53) 새마을지도자, 이옥순(53) 부녀회장이 마을의 대표자들이다.
마을 이름의 어원인 용암은 용(龍)바위(岩)는 양계장 마을 인근 마을에서 내려가는 개울 변에 있었으나 80년 수해 때 묻히고 말았다.
용암리는 현재 5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제일 큰 마을인 무내미와 가장 작은 대비마을, 마을 입구 양계장이 있는 마을인 에덴촌(하 용암)으로 구성됐다.
무내미는 옛날 딸만 많이 낳은 마을이란 유래가 전해지고 대나무가 많았다는 대비 마을은 마을 회관 넘어 있으며 옛날에는 가장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에덴촌은 처음에는 외따로 떨어진 곳에 교회만이 있었으나 교인들이 모여살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자 에덴촌이라 불렀는데 현재 교회는 원용암으로 이전했으며 하용암 마을은 마을 입구를 말한다.
외부인의 눈에는 마을, 마을이 거리상 크게 떨어져 있지 않은 그 마을이 그 마을인데 이런저런 마을별 사연을 안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의 마을로 묶는 것도 억지인 듯 하다.
하지만 아주아주 옛날 정말 자연마을 명으로 마을이 존재할 때는 아마도 길이 훤하게 나 있고 또 포장도 다 돼 있어 하나의 마을로 보였던 것과는 달리 산길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좁은. 그러니 다 다른 마을이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도 지금 용암리 주민들은 대비, 궝말 이런데 연연하지 않은 용암 단일 마을로 열심히 일하고 이웃간에 서로 돕고 화합하면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있다.
# 루드베키아 꽃길가꾸는 김금예 할머니
용암리는 루드베키아 꽃길로도 유명하다. 마을 안길 양쪽에 황금빛깔의 루드베키아 꽃은 마을 인상을 화사하게 만들어 놓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길을 조성한 사람은 이 동네에 혼자 살고 있는 김금예(80) 할머니다.
김 할머니는 1999년 8월 본보에도 소개된 바 있는데 1996년 남의 집 일을 갔다가 도로변에 식재된 꽃이 하도 예뻐서 꽃씨를 받아왔다. 그리고 싹을 틔워 꽃묘를 길가에 심은 이후 매년 루드베키아 꽃길을 가꾸고 있다. 김 할머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접시꽃도 심고, 봉숭아도 심고, 서광도 심었다.
꽃묘가 마르면 물도 주고, 비료도 주고, 꽃 묘 주변에 풀이 올라오면 행여 꽃묘가 제대로 크지 못할까봐 풀을 뽑는다.
그 정성에 루드베키아 꽃은 매년 화사한 빛깔로 고운 자태를 뽐낸다. 그 어느 손길이 김 할머니의 꽃길을 가꾸는 것 보다 더 아름다울까.
이는 각 읍면마다 품을 사서 도로변에 꽃길을 조성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 비할 바가 아니다.
80살 고령의 김금예 할머니는 용암리 마을 취재를 간 날에도 꽃길 주변의 풀을 뽑고 있었다.
# 소득작물로 부촌 일궈
이 마을도 옛날에는 대부분 담배농사를 지었다. 담배농사를 짓는 가구가 많은 마을에 설치했던 잎담배 공동건조장 시설이 있으며 지금도 담배농사를 짓는 가구가 있다. 그것으로 자녀들 학교 보내고, 생활비도 쓰고, 자녀 결혼도 시켰다. 효자 작목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그만큼 농사짓기가 힘들어 10여년전 담배농사를 접고 대체 작목을 선택했다.
논농사는 벼, 밭작물로는 고추가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현재 용암리 고소득 작물이라고 보면 사과, 복숭아, 표고버섯, 고추 시설 하우스, 누에, 한우를 꼽을 수 있다.
사과는 임진만씨와 이민우씨, 이춘실씨가 재배하고 복숭아는 임진만씨와 김철수씨가 농사를 짓고 있으며 박준석씨는 표고버섯, 이대현이장은 아들 이준기씨까지 합류한 대를 잇는 양잠 농사로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 황재남씨, 하찬호, 문길웅씨, 박만하씨, 남상우씨, 오건영씨는 한우를 사육하고 있는데 박만하씨는 60마리를 사육하는 등 다두 사육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오정근씨는 농약을 치지 않은 친환경 벼농사를 지어 도시 소비자들에게 일반쌀 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
특히 양잠농사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이대현 이준기 부자(보은토종누에농장 / www.silkworm.co.kr)는 아이디어 누에 제품으로 KBS 무한지대에도 방송되는 등 동네 유명인이다.
당뇨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누에를 건조시켜 환, 가루로 판매하거나 동충하초를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에고치 기르기 체험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누에고치 집을 이용해 공예품을 만들고 있으며 뽕잎을 첨가해 효능은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냄새가 나지 않는 청국장 특허까지 냈다.
이같은 다양한 제품이 나오기 전 이대현 이장이 양잠을 했을 때는 봄과 가을 총 30장의 누에를 쳐 누에고치로 팔았을 때는 생각만큼 소득을 올리지 못했으나 다양한 아이디어로 지금은 누에만으로 연간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중소기업이다.
지금은 오디를 수확하는 오디뽕나무도 3,305<&36075>(1천평)를 식재한 양잠 부농이 됐다.
# 쓰레기 매립장
수한면 교암리에 매립했던 쓰레기 처리 시설이 포화상태가 된 후 갈곳을 잃은 쓰레기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군은 군유림이면서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쓰레기 매립장을 조성하기 위해 적지를 물색했고 그 때마다 해당마을 주민들은 벌떼같이 군청을 쳐들어(?)왔다. 보은읍 용암리도 마찬가지였다. 왜 하필 우리마을이야. 쓰레기 매립장을 용암마을 뒷산으로 결정했을 때 주민들의 반발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용암리 주민들은 결국 매립장 조성을 받아들였다. 1993년에 조성한 후 10년까지만 사용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매립용량이 많이 남아 연장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2005년에는 주민반대로 내속리면 갈목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레기 반입을 중단했을 때 갈목으로 갈 쓰레기까지 받아줬다.
다시 갈목 매립장이 재개됐지만 1993년 조성 때 10년만 사용한다는 것이 14년이 지난 지금도 여유분이 남아있을 정도니 앞으로도 몇 년간은 더 용암 매립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과거 복토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매립장 관리 부실로 마을에 파리, 모기 등 해충이 들끓어 사과 등 과일에 파리똥이 묻고 들에서는 새참 먹기도 힘들었으나 지금은 깨끗하게 관리해 이같은 피해가 줄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앞으로도 매립장 관리를 철저히 해 마을 주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줄 것을 주문했다.
# 먹을 물이 걱정
마을 이름에 바위(岩)자를 쓰듯이 지하에 암반이 많아서인지 관정을 뚫어도 주민들이 풍부하게 사용할 물을 얻지 못하고 있다.
매립장 조성과 관련 주민 숙원사업으로 주민 식수 확보를 위해 그동안 에덴촌, 대비마을 앞, 궝말 앞, 아래 무내미, 교회 앞 등 5군데 관정을 굴착했으나 시원한 물줄기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회관 앞에 굴착한 관정을 이용하고 있는데 물이 부족하다. 그래서 다시 대비마을에 관정을 파려고 하는데 물이 잘 나올지 걱정을 하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관정만 계속 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시내 주민들이 이용하는 상수도를 연결해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다.
지금 용암리 주민들은 물 걱정 외에 큰 걱정이 없다. 다른 마을에 비해 영농으로 인한 소득도 높고 쓰레기 매립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을 내 많은 숙원사업도 해결하고 경관을 아름답게 가꿔주는 루드베키아 꽃 향기가 마을을 휘감고 있다.
마을을 바라보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풍기는 향기는 꽃향기보다 더 향기롭게 다가왔다.
<새로쓰는 마을이야기(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