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87) 수한면 병원리
-조선시대 병원이 있던 마을
2007-02-16 보은신문
아주머니 손님들이 하나둘 따끈따끈한 가래떡이 담긴 보따리를 들고 거리로 나서는데 다 지나간 줄 알았던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대는 통에 발을 떼기조차 힘들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 맛난 음식 해 먹일 생각에 찾아오는 친척들 반길 생각에 설날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장본 물건들로 짐이 꽤 무거워도 그다지 대수롭지가 않나 보다.
아주머니들 손에 짐이 자꾸만 늘어난다.
설날을 맞아 찾아드는 사람들로 마을이 시끌벅적 할 것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세배를 하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윷놀이를 하고, 푸짐한 음식에는 여러 번 손이 간다.
고향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어머니가 해준 맛있는 음식만큼이나 듬뿍듬뿍 싸갔으면 좋겠다.
언제나 정겨운 고향의 모습을.
수한면 소재지인 후평리 인근에 자리한 병원리는 보은자동차 운전면허교습장이 있는 곳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옛날 사냥꾼이 사냥매를 키우면서 매로 사냥을 하였다는 가련 마을 앞의 매봉산. 그 아래 병원리 마을이 있다.
마을 안에는 작은 천(川)이 흐르고 마을 곳곳의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는 앙상하다기 보다는 비가 온 후 갑자기 불어대는 강풍에도 꼿꼿이 서 있는 모습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예전부터 벼, 고추, 담배 등을 재배하며 땅을 일구었고 요즘은 오이, 배추 등 시설채소와 과수 농가가 늘고 있다.
마을에는 윤종태 이장이 운영하는 보은자동차 운전면허교습장과 (주)부농 흙공장(대표 유한무), 성진석재(대표 현 JC회장 이성엽), 맛고을 식당 등이 있다.
(주)부농 흙공장 대표 유한무씨는 해마다 못자리용 상토흙을 마을에 한차씩 기증하고 있으며 흙공장 공터를 사용토록 해 마을에서 게이트볼 장을 설치, 농한기면 남녀 팀이 게이트볼을 즐긴다. 병원리는 여자팀도 구성돼 있어 남녀 팀이 경기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보청저수지에 있는 항건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큰 냇물을 이뤄 병원리 마을을 휘돌아 흐른다. 병원리 마을 앞을 흐르는 항건천과 함께 주민들이 함께 해온 세월도 많이 흘렀으리라.
마을 봉사자로는 윤종태(62) 이장과 김기춘(70) 노인회장, 정희춘(49) 새마을지도자, 현용우(53) 부녀회장이 있다.
#조선시대 병원이 있던 곳
본래 수한면 지역으로서 조선시대 함림역(含林驛)에 딸린 병원이 있었으므로 병원이라 하였는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병원리라 하였다.
병원이라 함은 조선시대 행인들의 숙식을 제공하던 곳으로 의료기관을 가리키는 병원(病院)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0가구 160여명의 주민이 생활하는 병원리는 6개의 자연마을이 있었으나 그 중 갱변과 새터 마을이 없어지고 그곳에는 현재 유한무씨가 운영하는 흙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현존하는 자연마을 가련, 작은골, 정자말, 원너머는 저마다 각기 다른 유래를 지닌다.
가련은 연정골에 연정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아름다움을 연상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병원리의 가장 큰 마을인 안말을 일컫는다.
작은골은 금박골 밑에 김씨, 박씨가 살던 곳으로 아주 작은 마을이 처음으로 병원 마을에 생겼기 때문에 작은골이라 불린다.
정자말은 칠원 윤씨 문중에서 부모에게 효행한 윤종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문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윤종은 그의 어머니가 해소로 고생함을 보고 지성껏 간호하며 메추리 고기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구할 길이 없어 하늘을 보고 통곡하니 한 쌍의 메추리가 방으로 들어와 이를 고아드려 병을 고쳤다고 한다.
병원리에는 윤종의 효자문 외에 경주 김씨 효부각도 있다. 전주 이씨 이윤명의 부인으로 18세에 출가하여 달포만에 그의 남편이 죽자 스스로 자결하려다가 늙은 시부모를 모시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여 마음을 고쳐먹고 정성을 다해 시부모를 봉양함에 이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1955년 문묘에서 표창하여 그 효부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효부각을 세웠다고 한다.
부모를 잘 섬기는 효(孝)가 언제부턴가 조금씩 뒤로 밀려나 그 중요성이 잊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멀어져 가는 효 정신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은 과일나무에 열린 과일을 따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원너머는 병원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라 원너머라 불렀다고 하며 수한면사무소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원너머에 있던 수한면사무소는 80년 수해 이후 2, 3년 뒤 지금의 후평리로 이전하였다.
#보청 저수지에 수변생태공원 조성
병원리에서 회인 방면으로 조금 더 가다보면 경관이 수려한 보청저수지를 볼 수 있다.
30여 년 전 축조된 저수지는 수량이 풍부해 벼농사가 용이해져 주민들이 생활 기반을 든든하게 다지는데 물꼬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현재 또다시 주민들의 삶에 새로운 물꼬를 열어주기 위해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작년부터 보청저수지에 수변생태공원 조성 사업을 벌인 군은 총 12억을 투입 금년도 말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보청저수지 일대에 야외학습장, 야생초 화원, 아치형 목교, 관찰로, 수생식물원, 파고라, 정자 등이 조성돼 청소년들의 생태학습장과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청원∼상주간 고속도로가 저수지를 횡단함에 따라 생태공원이 완공되면 고속도로 이용자들이 보청저수지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조성된 공원의 경관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보청저수지 수면 위로 지나가는 고속도로와 수려한 주변 경관, 수변 생태공원이 세 박자를 맞춰 잘 어우러진다면 국립공원 속리산과 청남대를 연계한 훌륭한 관광벨트가 조성돼 지역의 관광 경기가 크게 활성화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시작된 사업이다.
그런 만큼 여러모로 침체된 지역을 걱정하며 완공을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에도 기대감과 설렘이 한자리씩 차지한다.
윤종태 이장은 “교암리, 후평리 등 병원리 일대의 마을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없는데 보청저수지에 생태공원이 조성되면 주민들이 휴식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관광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더욱 좋지 않겠냐며 성공적인 사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냈다.
보청저수지를 지나며 꽃향기가 손짓하는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을 뺏길 날이 기다려진다.
병원리는 그동안 마을 소유의 전답 400평에서 나오는 20만원과 구 마을회관을 창고 용도로 임대하고 받는 임대료 50만원을 마을 기금으로 활용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일에 나가야 할 돈은 많은데 마을기금이 조성돼 있지 않아 5년 전 윤종태 이장이 이장직을 맡고 난 다음부터 해마다 자비로 200만원씩 마을에 기부를 해 1000만원에 달하는 마을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또 얼마간의 동답을 처분하게 돼 그 수익금을 합해 지금은 총 3000만원 가량의 마을 기금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베푸는 삶이 좋은 것인 줄 알면서도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쌈지 돈을 풀어 몇 만원 마을에 내놓는 인심이나 윤종태 이장처럼 큰돈을 선뜻 내놓는 인심이나 베푸는 이들에게는 아무나 가져보지 못하는 뿌듯함이 주머니를 더욱 두둑하게 채워 줄 것이다.
이미 마을로 날아든 까치는 저마다 즐거운 설날을 보내는데 이제 설을 맞아야하는 사람들은 다시 찾아온 강추위로 몸을 움츠린다.
설 연휴기간에는 날씨가 포근해져 고향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벼워지면 좋을 텐데, 그리고 따뜻한 봄소식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김춘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