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84)-마로면 송현리(솔고개)
말보다는 실천이 앞서는 솔고개 주민들
2007-01-26 보은신문
산은 조금은 헐벗고 그때만큼 장관을 이루진 못해도 고갯길은 여전하다. 깨끗하게 포장까지 돼 있어 주민들이 등산로로 이용하기도 한다.
52가구 123명의 주민이 생활하는 송현리는 샘뜸, 수영골, 윗솔고개, 새마을촌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샘뜸은 빈집이 몇 채 헐리고 남은 건 3가구가 전부지만 마을 앞에는 450여 년 된 느티나무 거목이 예사롭지 않다. 박씨 삼형제가 심었다는 느티나무는 세 그루 중 현재 두 그루만 남아 있으며 송현의 명당은 이 느티나무가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느티나무 앞 도로변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7∼8월이면 하얀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주변을 은은한 향기로 뒤덮는다. 진흙 속에서 깨끗한 꽃이 피는 모습을 보고 흔히 속세에 물들지 않아 군자의 꽃으로 표현하는 연꽃은 종자가 많이 달려 다산의 징표로도 삼았다.
마을 뒤 골짜기에 옻샘이 있다는 수영골. 몸에 땀띠가 나거나 옻이 올랐을 때 옻샘에서 나는 물로 씻거나 마시면 환부에 난 상처들이 깨끗하게 낫는다는 마을 할머니들의 체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주민들의 생활에 지금까지도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는 샘이다.
송현리는 정주권 개발 사업으로 문화마을 조성 사업이 이루어져 윗솔고개에는 마을 안길 포장, 넓은 공원 조성, 마을회관 건립 등 주거 기반이 다른 시골 마을 보다 잘 조성돼 있다.
70년대 새마을 사업 초창기 때 아랫말에 살던 20여 가구는 윗솔고개 앞 지금의 자리로 집단 이주를 해 그 후 새마을촌이라 불린다.
마을에는 왕래재(旺來재) 고개라는 역사 깊은 고개가 있다.
웃솔고개에서 소여리 큰말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려 제31대 왕인 공민왕이 제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상주까지 피난했다가 환궁하는 길에 넘었다고 한다. 마을 유래비에도 이 같은 유래가 기록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을 봉사자로는 홍이웅(62) 이장과 홍재서(67) 노인회장, 신원종(41) 새마을 지도자, 이점례(64) 부녀회장이 있다.
#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부촌 일궈
"마을에 농가가 56호면 원두막이 56개였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젊은 시절에는 참외 농사에 힘을 쏟았다.
마을이 온통 참외밭이었고 집집이 원두막을 하나씩 지었다고 하는데 그 풍경을 상상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관기 장날이면 그 당시 한창 재배를 했던 먹참외, 개구리참외 등을 담은 광주리를 이고 팔러 나온 사람들 중 대부분이 송현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부지런하고 강한 생활력으로 농사를 짓고 살림을 꾸려온 송현 아주머니들의 억척스러움에 살림살이가 하나둘 늘어나고 자식들이 웃으며 공부했을 것이다.
주민들이 담배로 작목 전환을 하면서 참외 농사는 차츰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담배 재배는 농가소득을 높여줬을 뿐만 아니라 개별 판매가 아닌 전량 매상 제도로 판로가 해결돼 농민들이 판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어 많은 주민들이 담배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지금은 한우 사육과 과수를 재배하는 복합영농의 형태를 띠고 있다.
축산 농가는 9호로 최하 50두에서 100두 이상 사육하는 농가도 있다.
송현리는 신함리(보은읍)와 함께 보은의 축산업 발전에 있어 선구자적인 마을이라고 했다. 마로면이 한우 단지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뿌리에는 시대를 앞서간 송현리 축산 농가들의 발자취가 영양분이 되어준 것이다. 30년 전 홍이웅 이장이 처음 한우 사육을 시작했으며 그 뒤로 농가 규모가 늘어났다고 한다.
과수 농가는 사과, 배, 포도, 복숭아 등 다양하며 축산 농가가 과수 농사를 병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외에 더덕, 각종 약재나무를 식재해 판매하는 임산물 재배 등이 있다.
주민들은 참외 팔고, 담배 재배하고, 소 키우고, 과일나무 심어 송현리를 부촌으로 만들었다.
# 찰흙같이 똘똘 뭉치는 주민들
"한 사람 한 사람 보면 모래알 같은데 뭉칠 때 보면 꼭 찰흙이여"
홍이웅 이장이 주민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을회관 할머니방에는 샤워시설이 마련돼 있다. 목욕 가방을 들고 집에서 나온 할머니들이 읍내 목욕탕에 가는 것이 아니고 마을회관으로 향한다. 주민들이 애용하는 곳이다 보니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 운영하고 있었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목욕을 절대 금하고, 할머니들은 청소 당번까지 정해 모두들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당번이 남아 할아버지방 화장실까지 말끔히 청소를 한다고 한다.
하나의 규칙이라도 제대로 지키는 주민들이 있기에 함께 모여 앉아 점심을 해먹고, 목욕을 하고, 청소를 하는 등 즐거운 단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주민들은 할머니방에 있는 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이 불편한 할아버지들을 위해 할아버지 방에도 샤워시설을 갖추고, 마을 회관 밖에 수도 시설도 설치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주민들은 행정기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취재를 간 날, 아주머니들이 모여 만두를 빚고 있었다. 그 중 한 분이 우리 마을은 20명만 넘어가면 잔치라고 했던 말이 사비를 들여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사다 나르는 한 아주머니처럼 주민들의 푸짐한 인심을 말해주는 듯 했다.
어른들은 그들 방식대로 겨울을 나고,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직장을 다니고 있어 한가한 겨울철이라 해도 마을에서 젊은이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이런 젊은이들이 하는 짓도 예뻐 마을 어른들이 하는 일에는 무조건 찬성이라고 한다. 어른들이 좋은 본보기가 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청년회에서는 할머니방에 운동기구를 마련해 주고, 할아버지방 운동 기구는 마을 기금으로 장만하고, 부녀회는 풍물놀이에 사용되는 악기들을 새로 장만했다. 마을 땅에서 생산되는 쌀을 제공해 어른들이 점심을 해먹을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 노인회 할아버지들은 공원, 다목적광장 등 일년에 4∼5번 마을 주변 풀 깎기를 하고 마을 기금에서 노인회 운영비조로 어느 정도 액수를 받는다고 한다. 할아버지들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지만 마을에서는 그래도 어떻게 가만히 있냐며 그렇게 라도 고마움을 표시한다고 했다.
주민들이 안정된 소득으로 비교적 안정된 경제 생활을 누리고, 주민들의 사회 진출도 빠르고, 기계화도 빠르다. 찰흙처럼 뭉치는 단합심도 있다.
이런 모습들 앞에는 말보다는 실천이 앞서는 주민들의 진취적인 발걸음이 항상 선두에 있었다. 주민들은 말보다는 직접 발로 뛰며 마을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 필지 분양은 됐어도 집이 없다
농촌 지역 주민들의 쾌적한 삶의 기반을 조성해 정주의욕을 고취시키고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화마을의 조성 목적이다.
송현리도 문화 마을로 선정돼 14필지 중 모두 분양을 마쳤지만 집을 지은 곳은 홍이웅 이장이 분양 받은 필지 딱 한 곳뿐이다. 현재 분양한 땅에는 집은 한 채도 없고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무성한 풀은 주민들이 베야하고, 땅에는 자갈이 워낙 많아 뭘 심기도 힘들다.
한 주민은 농사를 지을 양으로 분양 받은 주인에게 땅을 빌렸는데 돌을 골라내는 일만 해도 큰일이라는 것이다.
도로 위 이정표에는 '송현리 문화마을'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지만 그 말이 조금은 무색해 보였다. 언젠가는 분양 받은 사람들이 집을 짓고 들어와 살겠지만 좋은 일 앞에 웃지 못하는 건 왜일까.
윗솔고개 남쪽들인 설매들의 농지정리와 장마 때면 쌓인 토사와 돌로 도랑이 막혀 논으로 물이 넘치고, 둑이 깎이는 도랑 보수 공사를 원하는 주민들.
도깨비 방망이라도 있으면 마법이라도 부려볼 텐데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윗솔고개 마을 앞 공원에는 어린 소나무가 세 그루 심어져 있다.
군청에 근무하다 지난해 정년퇴임을 한 허필성씨가 같은 송현리 출신인 한 출향인의 도움으로 수목원에서 정이품송 아들이라고 하는 소나무를 구해와 홍이웅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가 포크레인을 가지고 있는 주민에게 부탁해 함께 심은 것이라고 한다.
어린 소나무가 건강하게 자라 아이 키를 훌쩍 넘기고 저 산의 소나무들과 키를 나란히 할 때가 되면 송현리는 문화마을다운 모습으로 잘 가꿔진 마을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김춘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