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외면 아시리(78)-따뜻한 인정이 넘치는 아시리 주민들
2006-12-15 보은신문
20호의 작은 마을이지만 지적도 상의 면적은 꽤 넓다고 한다.
보은 쪽에서 오다보면 도로 양편으로 (주)대광주철과 골프 연습장이 있고 오른편으로 아시리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진입로에는 수령이 몇 백년은 됐을 법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무려 7그루나 있다. 그 중 굵기가 유독 굵은 한 그루는 보호수로 지정돼 있었다.
이곳은 팔교정이라 불리는 곳으로 주민들이 애용하는 느티나무 정자이다. 능성 구씨 8대조가 심었다는 나무로 처음에는 8그루를 심어 정자로 사용했었는데 일제 시대 일본 사람들이 학교를 짓기 위해 한 그루를 베어내 현재 7그루만 남아 있는 것이다.
옛날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려고 한양으로 갈 때 마을 앞을 지날 때면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쉬었다 가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지만 거목의 나무에 푸른 잎이 무성한 한여름에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장관을 이룰 것 같았다.
아시리는 능성 구씨 집성촌이었다. 지금은 능성 구씨와 타성이 거의 반반으로 예전의 집성촌의 성격이 살아 있다고 할 순 없으나 한 사람 한 사람을 내 가족같이 위하고 생각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그전만 못할 것이 없어 보였다.
아시리는 지형이 집의 형국을 하고 있는데 마을이 들어선 곳이 아씨방에 해당한다 하여 아씨방이라 부르던 것이 변한 것이며 아시뱅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마을에는 아씨방에 걸려 있는 선반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선반다리라고 불리는 곳도 있다.
해마다 정월 초사흗날이면 산제당에 산제를 올리는 주민들.
요즘 같은 시절에 옛 풍습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을 텐데 아시리 주민들은 마을이 없어지지 않는 한 산제는 계속 올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산제를 올리는데 드는 비용은 마을 기금을 사용하지 않고 쓸 만큼만 집집이 정성껏 돈을 모아 음식 장만도 하고 필요한 물건도 구입하고 있다.
아시리의 토질은 검은흙으로 주민들이 일을 하기에는 땅이 질척해 불편하기도 하지만 검은흙의 성분이 일반 흙보다는 좋은 탓인지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토질이 좋은 데다가 마을 뒤쪽에는 소류지도 있어 주민들은 조금은 수월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마을 봉사자로는 강석주(61) 이장과 정광복(75) 노인회장, 김시억(70) 새마을 지도자, 윤을선(67)부녀회장이 있다. 취재를 하는 자리에 구연환(73) 노인회 총무도 함께 참석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마을회관에서 매달 반상회
아시리 주민들은 매달 25일 반상회를 한다.
2개 반으로 된 마을은 규모가 작아 반상회 모임은 1,2반이 함께 모여 마을회관에서 가진다.
강석주 이장은 이장 회의에서 나온 면 행정 전달 사항 등을 주민들께 알리고, 한달 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등 반상회를 통해 주민들과 힘을 모아 마을을 돌본다.
요즘은 보기 드문 반상회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아시리 주민들의 모습에서 마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금년에 설립한 아시리 마을회관은 주민들에게 훌륭한 보금자리가 돼준다.
전에는 조립식으로 지은 건물을 마을회관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많은 불편이 뒤따랐다.
겨울이면 수도가 얼어 물을 길어다 먹거나 호스를 연결해 물을 받아서 사용했다. 눈이 많이 오면 무게를 견디지 못해 벽이 기울기도 했다. 거기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건물이 날아갈 듯 창문이 심하게 흔들렸다. 이런 불편함을 겪으며 7년 정도 조립식 건물을 사용하다가 다행히 올해 번듯한 마을 회관을 짓게 된 것이다.
이제는 마을 회관을 찾는 주민들의 발길이 사뿐하다. 뜨끈뜨끈한 방에 추위 걱정도 없고 온수도 잘 나와 설거지하는 것도 즐겁다.
강석주 이장은 텔레비전이며 냉온수기 등 회관에 필요한 물품들을 직접 마련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마을 주민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다.
거실에 있는 냉온수기 옆에는 항시 인스턴트 커피가 비치돼 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나면 주민들은 어렵지 않게 커피 맛을 볼 수 있다.
# 주민 화합은 단연 일등
7,80년대 치러졌던 새마을 대잔치는 아시리 주민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며 마을에 많은 영광을 안겨다 주었다.
구연환 노인회 총무의 말로는 새마을 대잔치에서 받은 상장이 마을회관 벽을 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아시리는 마을 금고를 모범적으로 잘 운영하는 우수 마을이었다고 했다.
그전부터 주민들의 협동심은 남달랐다.
주민들이 서로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살아오지 않았다면 지난날의 과거가 어떻게 빛을 발할 수 있었겠는가.
마을일을 내일처럼 여기고 이웃의 칭찬을 아끼지 않는 마음씨 좋은 아시리 주민들.
눈이 오면 제일 먼저 나와 회관 앞에 쌓인 눈을 쓸고, 식전마다 회관을 청소한다는 강석주 이장. 아시리는 물이 자주 달리는데 그럴 때면 높은 지대에 살고 있는 강석주 이장이 그것을 알고 항시 제일 먼저 물탱크로 달려가 물이 잘 공급되도록 일을 처리해 주민들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도록 돕는다고 했다.
그를 칭찬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 아시리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또 어떠한가. 마을 취재를 온다는 말을 듣고 강석주 이장 부인과 윤을선 부녀회장을 비롯한 아주머니 몇 분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온천에 가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좋은 기회를 마다하고 마을에 남아 음식을 장만하는 등 마을일을 먼저 챙기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훈훈한 시골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아시리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수 백년 된 느티나무를 보며 저 나무는 수많은 세월동안 수없이 지나간 모진 풍파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오랜 세월 기쁜 일 슬픈 일 다 나눠지고 한가족처럼 살아온 주민들은 작은 마을 아시리를 살기 좋고 화목한 마을로 만들었다.
느티나무는 마치 주민들의 넓은 마음을 칭찬이라도 하듯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푯대봉은 아시리 동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 봉화대가 있었는데 아직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흐르는 계곡 물을 받아 주민들은 식수로 사용한다.
계곡에 가재가 살 정도로 물이 맑고, 물이 억세지 않으며 물맛 또한 좋다.
자연수라 그런지 다른 지역 사람들도 아시리 물을 마시면 다들 물맛이 좋다고 하고, 마을 어른들이 다들 건강한 것도 물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마을 진입로는 새마을 사업 때 주민들이 손수 포장한 것으로 이제는 너무 오래돼 다시 포장해야 하는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차량 운행 시 길이 고르지 못해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다고 한다.
진입로를 따라 마을 안쪽으로 이어진 도랑은 곳곳에 둑으로 쌓은 돌이 무너져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그것으로 인한 수해 피해 우려는 주민들의 가장 큰 걱정이다. 드문드문 무너진 돌을 다시 쌓은 곳도 있지만 석축을 제대로 쌓아 어떤 경우든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주길 주민들은 바라고 있다.
아시리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강석주 이장. 지금은 자손들이 외지에 나가 있지만 훗날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을 지키며 살 거라고 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인심 좋고 이웃 간에 정이 넘치는 아시리 마을을 오래도록 그곳에서 볼 수 있길 바란다.
아시리의 겨울 풍경은 취재 간 날의 날씨처럼 포근했다.
봄여름가을, 꽃이 피고, 들판이 푸르르고, 오곡백과가 풍성한 계절의 아시리는 어떤 풍경을 하고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때도 주민들은 똑같은 얼굴로 마을을 찾는 손님에게 환하게 웃어줄 것이다.
김춘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