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 기념 작품전 연 우숙희씨
인생 희노애락 담은 49점 선보여
2006-11-10 송진선
그런데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지하 전시실에서는 하나의 기록이 될만한 전시회가 있었다.
그동안 전직 교사였던 우숙희(61)씨가 회갑을 기념해 서예작품을 비롯해 문인화, 민화, 한국화, 한지화, 서예까지 5개 부문 49개 작품을 전시했다.
그동안 작품 활동을 하며 모아놓은 수많은 것 중에서 그야말로 진수들만을 뽑아내 내건 작품들은 오랫동안 보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더욱이 이번 전시회에 내건 모든 작품들은 소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무료로 나눠줬다. 호당 ‘얼마’ ‘얼마’하며 작품에 돈을 매기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비록 세상에 누구누구라고 이름을 올린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작품을 하나 소지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수작들이어서 작품을 가져가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했다.
작품전을 연 우숙희씨는 “수준도 안되는데 무슨 전시회냐는 마음에 전시회를 여는 것을 무척 망설였어요. 그런데 하고 나니까 뿌듯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시고 함께 기뻐해 주시니까 흐뭇했어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우숙희씨는 또한 “유명작가가 아닌 경력 짧은 배우며 작품 활동을 하는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나도 개인전을 열 수 있겠다, 2, 3년 후에는 나도 개인전을 열어야지 하는 용기를 심어준 것도 보람”이라고 덧붙였다.
# 동갑인 남편 도움 커
생일이 8월15일인 우숙희씨는 이때를 즈음해 회갑기념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동갑인 남편인 김중규 보은정보고등학교장 역시 올해 회갑이기 때문에 생일에 하자고 남편의 조언이 있었다.
그러나 우숙희씨는 초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도 아동들의 그림 등을 지도했을 정도로 재능이 있었고 또 퇴직 후에도 나름대로 끼를 발휘하며 열심히 작품활동에 몰입해 많은 수작들을 냈지만 역시 남 앞에 공개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에게는 모든 정성이 들어갔고 애정이 담겨진 작품들이지만 남들도 그렇게 평가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회갑기념으로 개인전을 한 번 하겠다고 크게 마음을 먹었었지만 계속 망설이게 됐다.
그런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은 역시 남편. 김중규 교장은 우숙희씨와 함께 수많은 것들 중에서 전시할 작품을 뽑아내고 그 작품들을 표고하고 또 초청인사말을 쓰고 도록을 만들기 위해 일일이 작품 사이즈를 재는 등 손길을 놓지 않았다.
도록을 제작한 회사에서는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알아서 해줬기 때문에 편하게 제작할 수 있었다는 칭찬(?)을 들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보은도서관에서 함께 문인화, 서예, 한국화 등의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김중규 교장은 늘 자상한 남편,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고 우숙희씨는 그런 남편의 외조를 받는 가장 부러운 사람이다.
이번 우숙희씨의 개인전 개최에 가장 큰 용기를 주고 또 모든 것을 도맡아 해준 김중규 교장은 지인들과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내의 전시회에 초대하면서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멘트를 날렸다.
그의 초대의 인사말을 인용하면 ‘거울같이 마주보며 살아온 세월, 36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처녀 때 순진하고 어리게만 보였던 내자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고 회갑을 넘겨 황혼을 바라보게 되는군요. 오랜 교직생활을 접고나서 무료한 생활을 달래고자 붓을 잡기 시작한 아내가 마치 고사리 손을 갖고 움직이는 어린아이같이 미덥지 않았는데 붓놀림에 심취하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웠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 연우회에서 기념품 수 제작
도서관에서 같이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친목 모임을 구성했는데 이름이 벼루 연, 벗 우자를 써서 연우회(硯友會)라 지었다.
이들이 우숙희씨 작품 전시회에 많은 도움을 줬다. 직접 서울에서 옷감을 떠다가 회원들이 연우회라고 직접 글씨를 써서 판화로 찍어 테이블 보를 만들어 우숙희씨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기념품으로 제공했다.
우숙희씨 작품을 무료로 받은데다 기념품으로 받은 것까지 작품이니 이번 전시회로 인해 주민들은 높은 소득을 얻은 셈이다.
연우회 회원들도 우숙희씨의 개인전을 부러워하고 이번 전시회에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내년 가을에는 도서관 수강생들의 작품전을 개최하자는데 뜻을 모았으며 우숙희씨의 작품전을 계기로 일반인들의 도서관 평생교육 수강에 대한 문의와 함께 실제 회원 등록으로 이어지는 기회도 됐다.
# 작품 중 어머니에 대한 내용 많아
작품을 세상 밖으로 내놓는 것에 두려워했던 우숙희씨는 올해 충남 서예대전에서 특선을 차지했을 정도로 이미 수준은 평가받은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붓을 잡은 것은 20여년전 처음 서예를 시작했다. 교직생활 틈틈이 서예를 썼으나 학교 나가랴, 시부모 모시랴, 아이들 보살피랴, 남편 외조하랴 시간을 쪼개기도 어려워 아쉽지만 붓을 놓았다.
그리고 1998년 퇴직 후 다시 서예를 시작했다. 3년 전부터는 한국화를 했고 그리고 올해 봄부터 문인화와 민화에 도전했으며 한지화까지 배웠다.
다행인 것이 과거에는 배우고 싶으면 학원 등을 다녀야만 했고 도시에는 관련 학원도 많지만 보은과 같은 시골에는 골고루 배울 수 있는 학원이 갖춰져 있지 않아 마음이 있어도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평생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서관 등에서 이같이 평생교육 강좌가 다양하게 열려 우숙희씨도 도서관의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서예, 문인화 등을 그리며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숙희씨는 동료 수강생들에게 가장 열심인 사람이라고 칭찬을 들을 정도로 착실하다.
여러분야 작품을 활동하면서 우숙희씨가 늘 쓰고 있는 것은 ‘어머니’다. 김초혜의 시도 썼고 김종상 시인의 시, 김인자 시인의 시 ‘어머니’도 서예 작품으로 남겼다.
그중 그가 가장 마음에 담고 있는 글이 있다. 이번 전시회에도 내건 작품이었는데 김인자씨의 시 ‘어머니’다. 그 작품을 대할 때마다 친정 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내가 한 번 울면 어머니는 두 번 우셨고 내가 두 번 울면 어머니는 돌아서서 네 번을 우셨다. 이제 나는 내 아이가 한 번 울면 나도 한번 울 수 있는 어미가 되었다’라는 내용인데 자신은 이 작품을 쓰면서 돌아서서 네, 다섯 번은 아니더라도 한 번은 울 정도의 어머니는 된 것 같다고 친정어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자식사랑을 내비쳤다.
작가 선생님인 어머니 우숙희씨는 시집을 간 딸들이 손자를 낳을 때마다 회심곡 중에서 ‘금자동아 은자동아’ 구절을 써서 기념 해줬다고 한다.
남편 김중규 교장이 솔내(소나무 냇가)라는 호를 짓고 도서관에서 한문을 지도하는 시당 선생이 송월(松月)이라고 지은 호로 작품 활동을 하는 우숙희씨는 남편의 도움으로 방 한 칸을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으로 꾸미고 저녁에는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풍요로운 삶을 그려가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 물심양면 후원을 한 남편 김중규 교장은 36년 결혼생활로 졌던 빚을 이제 겨우 갚은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65년 대학에서 만난 캠퍼스 커플로 67년 우숙희씨가 제천 홍광초등학교에서 첫 교편을 잡았을 때 김중규 교장이 군 입대를 해 당시 보은읍장 이었던 김중규 교장의 아버지는 며느리감으로 인정하고 우숙희씨를 보은 동광초등학교로 전근시켰다.
처음에는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자취를 했는데 어느날 퇴근하고 자취방에 가니까 짐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시동생이 리어커를 끌고 와서 짐을 모두 챙겨 집으로 가져가 그때부터 우숙희씨는 예비 시집에서 생활을 했다.
예비 시부모를 모셨던 우숙희씨는 결혼(70년)하고서도 남편이 공부를 위해 상경한 후 혼자 시부모를 봉양해야 했고 공부를 마치고도 바로 돌아오지 못하고 경기도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을 정도로 신혼다운 신혼을 접은 채 오랫동안 혼자 시부모를 모셨다.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도 접고 삼산초등학교 재직 연한이 다 차면 동광초등학교로 옮기고 여기서 근무연한이 차면 학림초등학교로 옮기는 등 퇴직하기까지 오로지 보은의 아이들을 길러내는데 교직 전부를 바쳤다.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시부모를 모신 우숙희씨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에 담고 있었던 김중규 교장은 그래서 더욱 우숙희씨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아 사랑이 묻어나왔던 것이다.
회갑기념이지만 11월18일 결혼 36주년까지 기념하는 뜻깊은 개인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