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속 하개 선씨 종가 장맛 으뜸-장맛 유지해온 종부 김정옥씨
"대기업 회장 간장 1ℓ 500만원에 사갔다" 전국 화제 불러
2006-10-20 송진선
올해 4월 현대백화점 본점서 열린 ‘대한민국 명품 로하스 식품전’에 출품된 선씨 종가(외속하개, 중요민속자료 394호) 간장을 모 대기업 회장이 1ℓ에 500만원을 주고 사갔다고 한다.
또 지난 10일까지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한국 골동식품예술전에서 된장은 ㎏당 40만원씩에 팔렸다고 전했다.
도대체 무엇으로 간장을 만들었길래 겨우 1ℓ를 500만원씩이나 주고 샀을까하는 궁금증이 더하지만 답은 바로 그 간장이 350년된 덧간장이었다 것.
그래서 지금 외속리면 하개리 보성선씨 영흥공파 선씨 종택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고 안살림을 맡고 있는 영흥공파 21대 종부 김정옥(54)씨가 선대로 부터 물려받아온 350년된 덧간장을 취재하기 위해 각 언론사들이 그 집 대문턱을 연일 드나들고 있다.
볕이 잘 드는 마당 복판에 자리 잡은 장독대는 외부인이 쉽게 출입할 수 없게 담을 치고 대문까지 걸어 잠근 채 엄격히 보관하고 있다.
집안 전통에 따라 덧간장은 해마다 새로 담근 간장을 넣는 방식으로 20ℓ가량씩 보존된다. 이 과정을 거치며 핵산과 아미노산 등 간장 속 발효균이 소멸되지 않고 350년째 대를 잇고 있는 것이다.
스물 다섯의 나이에 선씨 종가로 시집온 김씨는 음식솜씨가 매우 훌륭했던 시할머니 유평희씨로부터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음식을 전수받았다.
가풍에 따라 묵은 간장, 된장, 고추장이 아무리 많아도 매년 간장을 담는다. 요즘처럼 주문해 사먹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간장, 된장, 고추장은 물론 약과, 유과, 정과, 대추초, 경단, 신선로, 홍어찜, 족편, 북어요리 등 누대에 걸쳐 내려오는 선씨 종가의 음식은 30년 종부 역사를 쓰고 있는 김정옥씨에 의해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지금도 유과 등은 1년 연중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 손님상에 차와 함께 내놓고 있다.
전통음식 조리 솜씨가 대단한 김정옥씨가 그중 자부심을 갖는 것은 탕국, 미역국, 나물요리 등 각종 음식의 밑간을 하는 덧간장을 누대에 걸쳐 보존하고 담백하고 맛깔스런 음식맛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장을 만드는 것이 다른 것일까. 다른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선씨 종가의 간장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10월말경부터 콩을 끓여 메주를 쑤고 자연에서 건조시키면서 자연 발효과정을 거친다. 메주가 얼면 안되기 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메주를 쑨다.
화력이 세야 콩이 잘 뜨기 때문에 메주콩은 가스 불이 아닌 가마솥에 끓이고 검은 쵸콜렛 색이 될 때까지 삶는다.
이렇게 쑨 메주를 이용해 음력 정월에 1년 이상 묵은 천일염 간수와 물의 비율을 잘 맞춰 햇간장을 담는데 햇간장은 가장 먼저 씨 간장 장독에 1년간 사용한 만큼 채워넣어 씨간장의 맥을 잇는 것이다.
간장 독에는 솔가지와 고추, 숯과 함께 종이로 만든 버선 등을 매단 새끼줄을 쳐 액막이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 때문인지 1980년과 1998년 수해로 마을 전체가 물바다를 이뤘지만 간장 독은 깨지거나 엎어지지 않고 반듯한 형태로 물에 떠다니다 발견돼 350년 종가의 맛과 전통을 이을 수 있었다.
간장을 만든 후 종부 김씨는 된장을 담는다. 다른 집에서는 된장에 옻 순을 넣는 등 여러가지 첨가물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선씨 종가는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
그래도 맛이 있다고 정평이 나 덧간장과 함께 된장, 무장아찌를 출품한 ‘한국 골동식품 예술전’에서는 된장 1㎏이 40만원에 팔렸다.
김씨는 “덧간장이 세상에 알려진 뒤 맛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음식 전문가나 미식가가 많지만 워낙 양이 적어 아무한테나 퍼주거나 팔 수 없다”며 “맥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시집간 딸(선소영, 29)을 불러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간장을 발굴한 한국 농어업예술위원회 김진흥 박사는 “과거 이름난 명문가나 종가마다 덧간장을 만들어 고유한 장맛을 유지했으나 지금은 보성 선씨 종가 등 몇 집안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라며 “선씨 종가 덧간장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희소가치가 커서 따로 값을 매기는 자체가 의미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한국의 전통장류가 완벽한 발효식품으로 세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며 “한국의 대표 장류를 보존·육성하려면 김씨 같은 기능보유자를 명인이나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정옥씨는 올해부터는 보은대추를 이용해 대추된장, 대추고추장, 대추초, 대추떡 등 대추를 이용한 음식을 만드는데 솜씨를 발휘할 채비로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