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부면 하장1리(진미)
넓은평야 원앙들이 있는 진미마을
2006-10-13 보은신문
마을 입구 수살목이라 불리는 곳에는 길 양옆으로 돌이 세워져 있고 참나무도 심어져 있다. 마을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표식으로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곳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경계 표시로 심어져 있는 참나무를 볼 수 있는데 허창억 이장은 참나무에서 참되고 어질게 살으라는 조상의 뜻을 읽고 있었다.
취재 중 만난 이하형 새마을 지도자는 마을의 역사가 한 400년 이상 됐을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로는 본인의 17대 할아버지인 눌헌(訥軒) 이사균이 관직에 있다가 이곳으로 부처(付處)돼 지내다가 복직이 되어 떠나고 동생인 이사권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그 후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하장1리는 경주 이씨가 터를 잡고 살다가 김해 허씨와 안동 권씨가 집성촌을 이룬 마을이라고 했다. 현재는 안동 권씨가 60가구 중 10여 가구로 가장 많다.
마을에는 1287(충렬왕 13년)∼1367(공민왕 16년) 고려의 문신이자 학자, 시인으로 알려진 익재 이제현 영당도 있다.
이곳은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로 풍수지리설로 보면 배산임수의 좋은 입지 조건을 갖췄다고 한다. 마을 양옆에는 구병산과 금적산이 있고 뒤로는 국사봉이 자리한다.
허창억 이장은 하장리는(下長里) 장산(長山)으로 불리다가 진묘로 불렸으며 진미라는 이름은 좋은 쌀이 생산되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眞米(진미)라 지은 것 같다고 했다.
하장1리는 방울토마토 재배 농가가 5가구로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그 품질의 우수성 또한 인정받고 있다. 이 외에 사과 재배 농가가 5가구, 한우 사육 농가가 7가구로 복합영농을 한다.
마을 뒤쪽에는 주민들이 홀개미 동산이라고 부르는 아담한 동산이 있는데 그곳에 산제당이 있어 해마다 정월대보름날이면 산제를 올린다고 한다. 하장1리 주민들은 뭔가를 기원하는 의식으로서의 의미 외에 산제를 주민들이 모여 화합을 다지는 하나의 장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장1리 마을 봉사자로는 허창억(56) 이장과 권현찬(73) 노인회장, 이하형(48) 새마을 지도자, 양복연(48) 부녀회장이 있다.넓은 평야 원앙들이 있는 진미 마을주민들은 추수한 벼를 길가에 널어 말리고 있었다. 콤바인으로 수확한 벼를 탄부면에서 제일 처음으로 모기장 위에 말리는 시도를 했다는 허창억 이장. 지금 농민들은 가을걷이로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마을 입구 수살목이라 불리는 곳에는 길 양 옆으로 돌이 세워져 있고 참나무도 심어져 있다. 마을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표식으로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옆으로 길이 넓혀지기 전에는 수살목이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 원앙보를 막아 벼농사 지어
진미(眞米)라는 마을명답게 하장1리는 고품질 쌀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앞 원앙들은 하장1리를 대표하는 쌀이 재배되는 곳으로 그 옛날 탄부면 상장리에 있는 원앙보를 막아 논에 물을 대 벼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보를 막아 물길을 바꾼다는 것 자체가 선구자적인 발상이었다며 주민들은 조상들의 뛰어난 개척정신을 높이 사고 있었다. 다른 마을보다 먼저 수리시설을 갖춰 농사를 지은 것이다.
원앙들 복판에는 동오리산이 아름답게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5개의 동산이 들녘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보면 마치 오리가 노는 형상처럼 보인다고 한다.
예전에는 원앙들을 상징하고, 농경지 유실도 막기 위해 버드나무를 심어 숲이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인해 지금은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하장1리에서 생산되는 쌀은 고령토인 토질과 일조량이 풍부해 미질이 좋고 밥맛도 좋다. 흙이 황토질이고 질기다하여 일상생활에 장화 없이는 못 살고 시집 온 새색시가 아기를 서넛 낳아야 흙이 떨어진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요즘은 품종 개발로 기능성 쌀을 재배한다거나 유기농 쌀 재배가 많이 시행되고 있지만 경지 면적이 넓고 위험 부담도 있어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 주민들도 아쉽다고 했다.
#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
못살던 70년대는 지나갔다. 그런데 농민들은 또다시 농촌이 살길을 걱정하고 있다. 지금 그들은 변화를 꿈꾼다.
올해 다시 이장 직을 맡은 허창억 이장이 20여 년 전 이장을 할 때만 해도 100가구가 넘었던 마을이 현재 60가구로 줄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분명 하장1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농촌의 고령화로 앞으로는 주민수가 더 감소해 마을이 축소되거나 어쩌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여러 농촌 마을이 이와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자 변화를 모색해 성공한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하장1리 주민들이 바라는 미래는 마을이 새롭게 변모하는 것이다. 주민들의 주거 공간을 아파트식 집단주거 형태로 만들고 현재 마을이 형성된 자리에 테마파크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
허창억 이장은 마을을 아름답게 꾸며 사람들이 모이고 기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인간미가 느껴지는 삶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연못을 메워 논으로 만든 곳이 있는데 그곳을 다시 연못으로 만들어 연꽃을 심는 등 경관을 보기 좋게 꾸밀 계획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이 살고자 찾아드는 농촌, 도시민의 발길이 닿아 농촌을 경험하고 농민과 연계해 유대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적 생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최첨단 시대를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21세기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진국의 다양한 정책 시도와 그로 인한 성과는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지역성을 살려 살길을 찾은 곳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았다. 발전, 변화, 성공 등은 내가 혹은 누군가가 꿈틀댈 때 내게로 오기 시작한다.
# 복지회관 시설 낙후 주민들 불편 호소
마을에는 2층 건물의 복지회관이 있다. 처음에는 탄부면 복지회관으로 탄부면민의 이용을 목적으로 지은 것이나 그것이 잘 활용되지 않아 지금은 하장1리에서 마을회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밖에서 볼 때 좋아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건물 안 시설은 너무 낙후돼 보는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회의실과 운동실, 샤워실, 독서실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은 지 20년이 가까워오고 그동안 관리가 안돼 시설이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사용하는 방은 너무 비좁고 주방 시설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장1리에는 이 복지회관 외에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변변한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하나 없다.
설립 초창기에는 외국인 주부가 아이들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에게까지도 외국어를 가르칠 정도로 활용이 잘 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의 말처럼 수리를 하면 주민들에게 좋은 공간이 되고 지역에서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방치돼 있는 복지회관을 보수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하장1리 주민 모두의 바람이다.
건물 앞 마당에는 몇 년 전에 만든 게이트볼 경기장이 있다. 동네 어른들이 모여 경기하는 모습을 보며 건물 안과 밖의 풍경이 너무나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폐한 건물 안에 따뜻한 온기가 불어넣어지길 희망하는 하장1리 주민들의 심정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주민들은 획일적인 행정체제가 아닌 지역마다 그곳에 필요한 부서를 운영해 사업을 추진하고 일을 처리하는 등 자율적인 행정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농촌은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면사무소에 영선(營繕)에 대한 일을 맡아 보는 부서를 만들어 늦은 밤 보일러가 고장 났다거나 급하게 수리할 것이 생겼다거나 하면 노인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장1리로 날아드는 까치는 주민들에게 어떤 기쁜 소식을 전해줄까? 마을 앞 도로변 하장1리 이정표 윗부분은 호두알로 장식이 되어 있다. 호두가 하장1리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궁금한 것은 당연했다.
허창억 이장은 20여 년 전 이장을 할 때 호두고을을 만들 생각으로 도로변에 호두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석 위도 호두로 장식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 심었던 호두나무가 지금까지 있었다면 하장1리는 진짜 호두고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호두를 수확해 판매한 수익금도 마을 발전에 한몫했으리라 본다.
이런 저런 연유로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이 아쉬움과 미련으로 남지만 하장1리 주민들은 또 다른 무언가를 계획하고 도전하려 한다.
허창억 이장이 좋은 장소가 있으면 농산물판매장을 만들어 주민들이 생산한 농작물을 판매하고자 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김춘미 프리랜서(writer@boeuni.com)
<새로쓰는 마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