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 업소를 찾아서(4) … 18년 역사의 금마차 다실
차도 팔고 인정도 파는 지역의 사랑방
2006-07-28 송진선
여름철에는 연신 더위를 쫓는 선풍기가 달달거리며 돌아가고 겨울에는 추위를 쫓는 구공탄 난로 위에 하얀 김을 뿜어내는 물주전자가 놓여있다.
다방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다방은 이런 풍경이어야 정감이 간다.
세련된 물건들이 차지하고 화려한 인테리어로 다방을 꾸며놓을 수도 있겠지만 남의 옷을 걸쳐놓은 것처럼 어색해 보인다.
옛날 시인들이 시감을 찾고 선남선녀와 양가의 부모들이 자리를 차지해 선을 보고, 정다운 사람들이 대화를 하고 빼어난 미모의 아가씨에게 마음을 뺏긴 순수한 청년이 발개진 얼굴을 들킬세라 연신 커피잔을 기울이는 모습. 다방안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다방은 담소의 장, 연락장소이기도 했지만 문화공간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세련된 분위기의 커피전문점과 아예 커피를 들고 나가 마실 수 있는 테이크 아웃점까지 성행하고 있고 다방이 아니어도 자판기, 식당에서도 후식으로 접대하는 등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해져 굳이 다방을 찾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지역에는 대물림하며 여전히 만남의 장소, 정을 쌓는 공간, 지역의 사랑방으로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다방이 있다. 바로 금마차 다실이다.
# 지역의 명물 그 안을 보니
입에 배인 것이 금마차 다방이었는데 이번 취재를 하면서 정확하게 간판을 보았는데 금마차 다실이었다.
금마차 다실은 보은읍 삼산리 중앙사거리에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있다. 관광지를 빼고 보은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찾기도 쉽다.
외관상으로는 아크릴 간판에 쓴 상호명도 너무 오래된 탓인지 글씨가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2, 3년 안에 글씨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치형 입구의 벽은 색깔을 설명하기가 어려운 벽돌로 채워져 있다. 차배달 오토바이가 들어서 있고, 수족관이 있고 푸른색 계통의 의자와 탁자가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턱 자리를 잡고 있다.
차 종류와 가격을 적은 메뉴판이 있고 이것저것 인테리어를 위한 소품들이 걸려있다. 난로도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커피를 내려 특유의 다방커피를 만드는 용기와 1인용 냄비, 스텐레스 물주전자가 금마차다실의 18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커피잔을 차곡차곡 수납할 수 있는 용기도 18년동안 그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의 힘까지 합쳐진 공간이었다. 세련되고 깔끔한 분위기가 아닌 촌스러움, 그래서 정겨움까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아마도 금마차 다실이 지금과 같은 그런 분위기가 아닌 도시의 커피숍처럼 아니면 테이크아웃 가게처럼 깔끔하고 세련됐다면 어색해서 순간 집을 잘못 찾았나 착각할 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이 커피향처럼 번져 있었다.
# 한 달한다는 것이 벌써 18년
금마차 다실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운영했다가 후대에 물려준 그런 대물림의 전형적인 케이스라기 보다는 아버지 명의로 돼 있던 다방을 2002년 아버지 김흥선(생존시 76세)씨가 작고하면서 아들 김정식(51)씨에게 물려준 것이다.
김정식씨가 다방을 운영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다. 농협을 다닌 아버지가 빚 보증을 선 대가로 채무자 명의로 된 다방을 대물로 받아 남에게 넘겨 빚을 탕감한다는 아버지의 계획에 의해 다방 운영자로 나선 것이다.
그것이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해인 1988년이다. 당시 김정식 사장은 용인대학교 유도학과를 졸업하고 경찰 공무원과 체육교사 시험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김창옥(49)씨와 결혼을 해 큰딸이 5살, 작은 딸이 4살 때였다.
전혀 다방을 운영하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때다. 건장한 체구의 남자들을 매 꽂았던 팔팔한 체력의 소유자가 팔자에 맞지 않게 커피 잔을 나르게 되다니. 그러나 무슨 업보인지.
처음에는 다방을 대물로 잡고 남에게만 넘기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문을 닫아놓으면 작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주변의 조언으로 그럼 한 달이라도 운영하면서 살 사람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문을 연 것이 18년이나 됐다.
다방 운영 경험도 없고 경황이 없어 주변 사람들이 소개소를 통해 마담과 아가씨 들을 소개해줬고 당시 금마차다실 전 주인이 운영했을 때 거의 문을 닫아놓다시피 할 정도로 운영이 안됐던 상황이어서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던 주인들이었다.
전 주인이 금마차 다실이란 간판을 달았지만 혹시 자신들과 연이 닿지 않는 상호일 수도 있어 이름을 짓고 점을 보는 곳을 찾아서 좋은 상호를 찾아줄 것을 주문했지만 금마차 다실이란 상호가 자신들에게 딱 맞는 좋은 이름이란 소리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약간 기대감도 생기고 자신도 붙었다. 김정식(현 유도협회 보은군회장)사장이 유도협회 일도 자유총연맹 청년회원이기도 하고 연송 적십자 봉사회원이기도 하는 등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고 남에게 믿보이지 않은 탓인지 다행스럽게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당시에는 자판기가 없었기 때문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난 후에도 꼭 다방으로 차배달 주문을 했고 사무실에서도 차 주문을 했었다. 계모임을 할 때는 쌍화차를 2, 30잔 주문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거의 배달이 주를 이뤘지만 또 지금과를 달리 자가용 대신 대부분 시내버스를 이용했을 때여서 명절에는 고향집을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금마차에 들러 차를 마시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 50석 정도의 의자가 꽉 찰 정도였다.
한 달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다방을 살려놓고 남에게 넘겨보자고 했지만 한 달, 두 달이 가도 적당한 작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은 5살이던 큰딸이, 4살이던 작은딸이 23살, 22살이 된 지금도 다방 문을 열어놓게 됐다.
18년이 되는 동안 금마차 다실을 거쳐간 손님은 손을 꼽기에도 부족하다. 관선 기관장들은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뜨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 주민들은 18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방을 찾는다. 곱디고운 얼굴은 이제 주름이 가득하고 까맣던 머리는 백발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세대교체는 아니더라도 그보다 젊은이들이 새로운 고객층을 만들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밤 시간 금마차 다실을 찾아 차도 마시고 지역을 걱정하며 의견을 나눈다. 그리고 문제제기를 하며 지역사회를 환기시키는 이론도 만든다.
그렇게 금마차다실은 단순하게 차를 파는 곳이 아니라 광장이요, 문화공간이요,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작은 정거장이 됐다.
# 대추달인 음료로 각광
조선시대 임금님에게 진상했을 정도로 명품이 었던 대추의 명성을 찾기 위해 재배농민은 물론 행정기관, 그리고 농협에서도 나섰을 때가 있었다.
거리에는 가로수도 조성하고 농협에서는 대추음료도 제조해 판매하고 농가에는 보조금을 지원해 재배면적을 확대시켰다. 그러나 모두 포기하고 심지 굳은 재배농민만 현재 살아있다.
5, 6년전인 그때 금마차다실에서도 지역 특산물인 대추를 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대추를 달인 차음료를 팔았었다. 차재료상에서 구입하는 분말이나 꿀을 섞은 대추 진액이 아닌 대추를 구입해 직접 다방에서 고아 그것을 직접 판 것이었다.
당시 신문은 물론 방송에서도 촬영을 나올 정도로 히트작이었다. 여간 손이 가는 것이 아니고 원가도 많이 들어간다. 비록 언론을 통해 알려지긴 했어도 이것저것 재보면 하다가 접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금마차 다실은 고집스럽게 사시사철 대추음료를 달인다. 겨울철은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서 판다. 다른 한방 재료를 넣지 않았어도 대추음료 한 잔 마신 것 만으로도 보양식을 먹은 것처럼 원기가 회복됨을 느낀다.
여느 다방이나 취급하는 차는 거의 비슷하지만 금마차 다실의 특징이 바로 고집스럽게 사시사철 대추를 고아 차로 만든다는 점이다. 시원한 대추음료 한 잔은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대추 캔 음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성을 마시는 것이다.
# 그들이 문을 못 닫는 속사정
이렇게 다방을 찾는 고객들에게 정성을 파는 금마차 다실은 처음에는 아침 5시 또는 5시30분이면 다방에 나와 그 날 장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아침 7시에 문을 연다.
태봉산이나 남산을 등산하고 들르거나 테니스, 조깅, 탁구, 축구 등 운동을 하고 난 다음 다방에 들러 차를 마시는 일을 일과로 삼은 고객들이 아침시간의 주요 고객이고 단골이다.
처음 금마차 다실을 개업했을 때 커피 한 잔에 400원, 아가씨 한 달 봉급이 45만원, 마담 봉급이 50만원이었다.
지금은 커피 한잔에 1500원이지만 식당마다 자판기가 있고 또 관공서나 거리에도 자판기가 있어 다방커피 주문이 크게 줄었다. 또한 옛날에는 대부분 걸어서 배달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대부분 차로 배달하기 때문에 운영비가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옛날과는 비교도 안되는 수입이다. 그래서 수입을 생각하면 문을 닫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업종을 잘 선택해 돈이 잘 벌리는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하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방을 찾아서 다방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고 지역의 사랑방이기도 하기 때문에 문을 닫을 수가 없다.
부인 김창옥씨는 “아마도 금마차 다실은 계속 운영할 것 같애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추억 속의 사람을 떠올릴 때, 그 사람의 특징과 사연뿐만 아니라 처음 만났던 곳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 만났던 곳을 찾는 경우도 많다.
혹시 바로 지금 떠오르는 추억 속의 얼굴이 있다면 지금 전화를 걸어 정겨움이 묻어나는 다방커피로 지나간 세월의 아쉬움을 달래면 어떨까.